'역사 논쟁'으로 우리 사회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쪽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난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억지며 왜곡이라고 반박을 한다.
좌파 성향이라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멘터리 동영상 '백년전쟁'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친일과 반일로 갈린 두 세력 간의 전쟁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역사를 단칼에 두부 자르듯이 재단을 해 놓았다. 대단한 능력이다.
1부는 제목부터가 '이승만의 두 얼굴'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파렴치범이라는 내용이다. 그를 건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공산주의와의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라고 강조하는 측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2부도 논란거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주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국이 세운 계획에 따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룩된 경제 발전이 박정희 한 사람의 공으로 미화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박정희가 아니라 누구라도 경제 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제작진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뿐 아니다. 전국이 역사 논쟁에 휘말려 있다. 거제도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인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 문제로 공방이 뜨겁다. 동상은 쇠사슬과 검은 장막을 덮어쓰기도 했다. 10만 명의 피란민 생명을 구한 은인이냐, 독립군 탄압에 나선 친일 군인이었느냐를 두고서다. 건립 장소가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인데도 그렇다. 마산에서는 마산역 앞에 세워진 노산 이은상의 시비와 관련해 시끄럽다. 이은상이 독재 권력을 옹호했다며 시민단체들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크레인까지 동원된다. 시비가 경찰 보호 시설이 돼 버렸다. 또 가곡 '희망의 나라로' 작곡자인 대구 출신 음악가 현제명에 대한 친일 이력도 논란거리다. 통영에서는 작곡가 윤이상이 친북 논란에 휩싸여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윤이상 음악제 개최 자체를 성토하고 있다.
또 감자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을 제목으로 한 영화 '지슬'도 화제다. 배경이 된 제주도 4'3사건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4'3사건이 아니고 '4'3학살'이란다. 누가 보느냐 그리고 발단과 배경에 시선을 맞추느냐, 과정과 결과만 보느냐에 따라 사건은 사태가 되고 항쟁도 되는 등 이름부터 달라진다. 1946년의 대구 10'1사건도 인화성이 충분하다. '공산주의자들의 개입과 공작에다 미군정의 정책 실패까지 겹쳐져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지만 좌파 진영에서는 동학과 3'1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항쟁'이라는 평가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역사 논쟁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일본제국주의 침탈 35년, 살벌했던 좌우 대립 5년, 동족상잔의 전쟁 3년, 타의에 의해 강제로 맞은 휴전 상황 60년. 친일과 항일,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로 갈려서 벌이고 있는 싸움은 끝이 없다. 수백만의 죽음과 그보다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대가로 지불했다. 그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상처가 없을 리 없다. 풀리지 않고 치유되지 못한 아픔과 한도 많다. 알려지지 않은 사연은 더 많을 것이다. 치유를 위한 시간과 노력은 지금까지보다 더 필요해 보인다.
사실은 언제나 하나다. 다만 '역사란 결국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다'는 역사가 E. H. 카아의 말처럼 시대마다 역사를 보는 해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역사 해석은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시대마다 달라진다. 그래도 한쪽 눈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다른 쪽 눈을 일부러 질끈 감아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의 역사 논쟁이 이런 편향성 때문에 빚어졌지 않은가.
그렇다면 쇠사슬과 검은 장막과 크레인은 답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강요를 한다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는 없다. 또 가리고 싶다고 허물과 과실을 감출 수도 없다. 그건 역사 해석이 아니라 왜곡일 뿐이다. 그렇다. 역사에는 분명 승자도, 패자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도 있다. 또 양지가 있다면 그늘도 당연히 있다. 양지만 봐서도 안 되고 양지만 있다고 억지를 쓰는 것도 곤란하다. 그렇다고 그늘만 보는 것도 잘못이다.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동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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