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의 마키아벨리

입력 2013-05-03 07:36:53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만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상가가 더 있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그의 명제는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권모술수의 정치가 통할 수 있다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폭군과 독재자의 철권통치에 이념적 자양분이 됐다. 마키아벨리는 대표적 저서 '군주론'을 통해 이렇게 피력했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그의 이념은 도발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는 '더 큰 도덕'을 위한 '부도덕'은 용인되어야 한다고 했다.

1469년 오늘 피렌체의 괜찮은 가문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집안 배경과 총명함 덕분에 잘나가는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피렌체의 제2장관에 임명됐고 이후 14년 동안 피렌체의 고위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는 그에게 늘 관대하지 않았다. 피렌체가 스페인군에 유린당하면서 그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투옥됐다. 고문 끝에 석방됐지만 재산을 몰수당한 채 칩거하는 신세가 됐다. 이 기간에 그는 열정적으로 집필에 매달려 대표적인 저서들을 썼다. 그는 1527년 6월 21일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피렌체가 낳은 천재들(미켈란젤로'갈릴레오'단테) 옆에 묻혔다.

김해용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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