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별똥별 씨앗을 밀어올리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어머니
마당 안에 극지(極地)가 아홉 평 있었으므로
아, 파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그냥 혼자 사무치자
먼 기차 대가리야, 흰나비 한 마리도 들이받지 말고 천천히 오너라
-시집 『북항』(문학동네, 2012)
어릴 때 누나는 내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 뭐냐고. 나는 대답했다. 파꽃. 아직까지 시 쓰지 않았다.
파꽃에서 어머니를 보다니. 우리를 "이 세상 가장 서러운" 곳에 옮겨 오고, 만삭의 몸으로도 일을 하느라 다리가 퉁퉁 붓고, 끝내 '별똥별'처럼 떠나보내고, 때를 봐서 천천히 허물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파꽃을 보다니. 사무친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의 기둥은 배흘림이다. 파의 꽃대를 빼다 박았다. 생명을 낳고 기르느라 어떤 고통에도 버티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퉁퉁 부은 다리도 배흘림이다. 역시 파의 꽃대를 닮았다.
파의 꽃대는 무거운 꽃을 이고 있다. 배흘림 꽃대는 무거운 것을 상쇄시키는 힘을 지녔다. 무거워 보이는 지붕을 감당하는 모습의 배흘림기둥과 닮았다. 어머니의 배흘림 다리도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힘에 겨워 퉁퉁 부은 것이라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사무친다. '흰나비'까지 사뿐 받아 이는 모습이라니.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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