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없다 삶을 배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남부, 호주 대륙의 북부에 인접해 있는 조그만 섬나라다. 동티모르를 기억할 때 전쟁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마도 가장 최근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상록수 부대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난의 역사
동티모르는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15년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 발견된 티모르섬은 1520년쯤에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곧 네덜란드인이 들어와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져 1661년쯤 섬의 서쪽은 네덜란드령, 동쪽은 포르투갈령으로 분할되었다. 서티모르는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1947년쯤 인도네시아 영토로 편입되었고 동티모르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동티모르는 1942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의 지배를 받기도 했는데 일본군은 동티모르 주민 6만여 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상록수 부대 참전한 전쟁의 땅
1974년 포르투갈 정부가 독립을 약속하고 이듬해 11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독립 선언 9일 만에 티모르 해에 매장된 유전을 노린 인도네시아군의 침략을 받아서 1976년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합병됐다. 그 뒤로 동티모르인의 독립운동과 인도네시아군에 의한 유혈탄압이 끊이지 않았는데, 1991년에는 딜리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주민집회에 인도네시아군이 무차별 발포하여 508명이 사망하였다.
지속적인 독립운동의 결과, 1999년에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주민의 78.5%가 독립을 찬성했지만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군과 민병대가 동티모르 전역에서 주민들을 납치하고 살해, 인구의 3분의 1이 학살되었다. 그해 9월에 UN평화유지군 7천500명이 파견된 것이다. 2002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지금 총리인 구스마오가 당선되면서 5월 20일 완전 독립하였다.
거리엔 부서진 건물과 낡은 자동차뿐
한 국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딜리는 관광객들이 찾아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곳곳에 전쟁에 부서져 버린 낡은 건물과 시꺼먼 매연을 뿌리며 달리는 고물 자동차들이 딜리의 현재를 짐작게 한다. 확 트인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와 해안 능선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예수상이 그나마 볼 만하다.
수도 딜리의 동쪽 해안 산 위에 우뚝 세워져 있는 그리스도레이 예수상은 1975년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하고 난 후에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복속시킨 것을 기념해서, 딜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해안의 산 정상에 27m 높이로 건설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을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예수상으로 올라가는 700여 개의 계단을 따라서 예수가 탄생하여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의 일생을 새겨놓은 부조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세 개의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지구 모양의 둥근 단 위로 예수가 서 있는데, 벽돌로 만든 바닥은 일부가 파손되었고, 타일도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어서 오래되지 않았지만 많이 낡은 느낌이다.
◆마을이 산 정상에
동티모르는 국토의 80%가 험준한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평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대부분의 마을이 산 정상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산악마을 에르메라 마을도 산 정상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산악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이 마을은 동티모르의 주요 커피 생산지인데, 커피는 동티모르의 주요 생산품이다.
유기농커피 생산지…가공 못해 가난
동티모르 커피는 200여 년 전에 포르투갈의 씨앗을 가져와 심어서 보급한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커피와는 달리 아직까지 유전공학에 의한 종자 개량이 이뤄지지 않아서 200여 년 전 품종 그대로이다. 그리고 남미나 베트남 등에서는 커피를 농장에서 재배하는 데 반해 동티모르는 야생에서 자생하는 것이라서 비료나 농약 같은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티모르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관리하거나 종자를 개량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에서 자라는 그대로 열매만 수확할 뿐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동티모르 커피를 직접 수입 가공해서 체인점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다.
척박함 속 미소 띤 사람 만나는 여행
지금도 동티모르에는 난민들이 많이 있다.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이지만 아직 어려움이 많다. 성당 앞마당에 정착을 하거나 공원이고 어디고 곳곳에 난민이 넘쳐난다. 난민촌에도 서로 들어오려고 해서 집이 불에 타서 없어졌다고 증언을 해주는 증인이 4명 이상 있어야 난민촌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어려움이 많아서 정부에서 병원 의료비나 교육도 무료로 지원하고 있으나 당장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교육은 뒷전인 상황이다.
동티모르 여행은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기대할 수가 없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보는 것이 여정의 전부일 정도다. 하지만 높고 험준한 산과 깊고 깨끗한 바다, 그리고 동티모르가 자랑하는 그윽한 향기를 담은 커피가 있는 곳이다. 그 속에 척박하지만 미소를 머금고 사는 사람들,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사진 도용복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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