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의 덫을 몇 분기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외풍이 덮쳤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찍어내라고 닦달하는 일본 총리가 잉크 냄새 나는 엔화를 헬리콥터로 막 뿌려대면서 불러일으키는 '아베노믹스'란 고약한 외풍이다. '아베노믹스'의 진로는 아편전쟁 이래 160년 만에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시아 각국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에 집중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문제는 아베노믹스가 금세 잦아들 돌개바람이 아니라, 상당 기간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악천후가 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은밀하게 외교력을 총동원, 국제 무대에서 양적 완화와 엔저 정책에 대한 우군 만들기 공작을 편 결과, 환율 조작이 아니라 내수 살리기라는 미국의 지지 발언과 G20의 묵인까지 받아냈다. 기세를 올린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중앙은행이 종전처럼 단순하게 물가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률까지 같이 관리하도록 '일본은행법'까지 바꿀 계획이다. 물론 일본 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 대국화도 겨냥하고 있다.
아직 우리 정부가 태평스럽게 관망하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불어닥친 현장으로 가보자. 4월 29일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는 세계 최고의 물가를 자랑한다는 동경 시민보다 더 비싼 돈을 내고 햄버거를 사먹어야 한다. 맥도널드가 전 세계에서 팔고 있는 빅맥을 대구 동성로에서는 3천900원에, 동경 한복판에서는 3천580원에 살 수 있다. 전 세계 빅맥 가격을 비교하는 빅맥 지수가 엔저 때문에 일본이 더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복'키조개 등 어패류나 광어 등 활어를 수출하는 어민도 아베노믹스 직격탄을 맞고 있다. 총 생산량의 17%를 일본에 수출하던 국내 키조개 업계는 일본산이 더 싸지는 바람에 판로가 막혔다. 전복도 현해탄을 넘지 못하고 국내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4만, 5만 원은 했음 직한 씨알 굵은 놈 한 묶음이 대형마트에서 2만 원 꼬리표를 붙인 채 열병하고 있다. 참치'김치'활어도 같은 신세이고, 문화 한류마저 공연 성공 후, 수익 삭감 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 동경 한복판에서 열린 JYP 공연은 전석을 다 팔고도 수익은 15%가량 잘려나갔다. 엔저 때문이다.
지역 주력 자동차 부품 수출 업체들은 환차손을 감수하며 억지 수출에 들어갔다. 연매출 3천억 원에 달하는 지역의 중견 자동차 부품 업체는 2년 전 일본 완성차 업계와 부품 공급 계약을 맺고 1년 연구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지난해부터 납품에 들어갔다. 5년 공급 계약이니 4년을 더 납품해야 하는데, 급격한 엔저로 부품을 수출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허탈하다. 아직은 버티지만 앞으로가 큰일이다. 일본차 업계는 싼값에 세계 최고 부품을 공급받으니 추가 주문을 계속 디민다. 궁여지책은 딱 하나. 수출 주문을 받지 않은 것이다. 수출을 많이 해야 먹고살 수 있는 우리나라 제조 업체들이 일본 주문을 받지 못하는 위기 상황이다. 이미 1분기 대일본 수출은 9.6% 감소했고, 철강과 기계 업종은 각각 25.0%, 23.9% 수출이 급감했다.
높은 지지를 얻으며 강한 일본 만들기를 밀어붙이는 아베 총리의 경제 브레인은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이고, 최전방 전투사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총재이다. 하마다는 2007년 정계에서 물러난 아베가 와신상담하며 경제 수업을 할 때 "하면 된다. 아베노믹스를 강하게 몰아붙여라"고 확신과 용기를 불어준 인물이다.
신임 구로다 일본은행총재는 취임 한 달 만에 마법을 부리듯이 양적 완화 정책을 이끌고 있으며, 통화량을 2년 안에 지금보다 2배로 늘리고 물가를 2%까지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이 와중에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15번이나 금융 완화 정책을 폈지만 찔끔찔끔 미온적으로 추진한 시라카와 전 총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정책 방향이 같지 않은 경제 수장을 용인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러난 시라카와 전 일본은행 총재는 고향인 구주 고구라에서 "저 사람 곁에는 가난이 따라다닌다" "재수없다"는 뜻을 지닌 '빈고노가미'(貧困の 神)로 놀림받고 있다.
국민소득 4만~5만 달러의 선진국이나 겪는 저성장 증세를 이미 앓고 있는 조로(早老)한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동참하지 않는 경제 브레인은 나라를 위해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하게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그게 한은총재이든, 경제부총리든 말이다. 통화 재정 금리 정책을 속도감 있게 아울러야 할 이때, 박근혜의 하마다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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