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전화 해도 되나요?

입력 2013-04-29 07:40:19

문득 휴대폰을 켜보면 문자 메시지가 몇 개나 와 있다. '언제 방문하면 될까요?' '오늘 저녁에 다른 약속 있습니까?', 심지어는 '지금 전화 됩니까?'라는 내용도 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엔 거의 모든 연락이 문자로 온다. 그러면 다시 문자로 답을 보내는데 조금은 성가시다. 얼핏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어 나중에 '왜 전화를 하지 문자를 보냈니?'라고 물으면 대답이 놀랍다. '전화는 무례한 것 같아서요.' 어느덧 통신예절이 바뀌고 있다.

사실은 통화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다. 1876년 3월 10일 보스턴대학 교수인 알렉산더 벨이 조수인 토머스 왓슨에게 자기가 발명한 전화로 "왓슨, 일이 있으니 이리로 와 주게"라고 말했던 세계 최초의 통화 이후 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AT&T사는 그로부터 133년째인 지난 2009년 12월 유선전화 서비스 포기를 선언했다. 유선전화 사업으로는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요즘 새로 가정을 꾸미거나 이사를 하는 경우 유선전화를 빼는 경우가 많다. 이미 유선전화는 소비자물가지수 목록에서도 빠졌고 대신 휴대폰 요금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전화기는 이제 집이나 사무실에 있던 것에서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그러다 보니 쓰임새와 사용예절마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휴대폰의 폰(phone)이라는 말은 원래 '음성'(音聲)이란 그리스어에서 온 것인데 그것이 바뀌고 있다.

'전화하지 마세요. 저도 전화하지 않을게요.' 유행가 가사가 아니라 2011년 3월 뉴욕타임스 칼럼의 제목이다. 이 칼럼을 쓴 이는 전화벨이 울리면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엔 '이렇게 다짜고짜 전화를 해도 되나?' 하게 된단다. 또 예전에는 '밤늦게 전화하지 말라'고 배웠으나 요즘엔 '아무에게나 불쑥 전화하지 말라'가 예절이 됐다며, 이제 전화를 걸려면 먼저 '전화해도 되나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면 주변을 돌아보자. 요즘 청소년의 대다수는 통화가 아닌 문자 메시지를 위해 휴대폰을 구매한다고 한다. SK텔레콤은 2010년에 문자를 비롯한 데이터 매출이 음성통화 매출을 앞질렀고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란다. 한국 이동통신사들은 통화와 문자 건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이동통신업계는 이미 오래전에 문자가 통화 건수를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빨리 바뀌는 세상에 정신 차리기도 힘든데 전화 예절마저 달라지고 있다. 골치 아픈 세상살이는 잠시 접어 두고 친구들과 느긋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또 문자가 온다. 뭔가 하며 들여다보면 바로 앞자리의 친구가 보낸 것이다. '혹시 시간 나면 술잔이나 돌려주게.'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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