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에게 개인의 이기심은 공동선의 산파다.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실제로는 동료 인간들에게 선한 존재가 된다. 이기심과 사익 추구라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악을 받아들이면 이로 말미암아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라는 간접적인 선이 뒤따른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명제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미국의 생태학자 개럿 하딘은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다. 애덤 스미스가 공동선을 찾아낸 이기심에서 하딘은 공동선의 파괴를 보았다. 너도나도 소를 마구 방목한 결과 공유 목초지가 황폐해져 종국에는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세계는 모든 인간이 천사일 때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가 천사인 이상향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는 천사도 있지만 천사가 있는 곳에는 무임승차와 배신이라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불편하지만 이것이 공유재산을 대하는 사람들의 솔직한 태도다. 공유재산이 공동 소유주 개개인에 의한 착취와 남용에 희생되는 이유다. 천사가 아무리 많아도 악마가 없어지지 않는 한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천사의 집단에 단 한 명의 무임승차자가 등장하기만 해도 천사들은 자연스럽게 무임승차자로 변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합리적이고 좋은 것이 전체에는 나쁜 결과를 낳는 '구성의 오류'는 이렇게 해서 생겨난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공유지의 비극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듯하다. 엄청난 누적 적자에다 동급 민간 병원에 크게 못 미치는 의료 수익에도 동급 민간 병원보다 훨씬 높은 인건비, 직원과 그 부모'자녀'배우자 부모에 대한 진료비와 입원비의 파격적 감면 혜택, 명예퇴직 실시 전 직원 수가 1일 평균 외래 환자 수보다 더 많았다는 인력 과잉 등은 진주의료원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직원 개인에게 좋은 것이 진주의료원 전체에는 나쁜 결과, 즉 엄청난 누적 적자의 모든 원인은 아닐 것이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진주의료원이라는 공유지가 황폐화되고 있음에도 개인에게 좋은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은 도덕성의 실종이다. 물론 공공 의료원은 이윤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패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주의료원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땅의 공기업은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공기업은 '철밥통'에다 '신의 직장'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한다. 두둑한 급여는 물론 초등학교 자녀의 사설 학원비와 미혼 직원의 '결혼 미팅' 비용까지 지급할 만큼 복지 혜택도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경영을 잘해서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자가 나도 급여는 깎을 생각도 않을뿐더러 상여금까지 지급한다. 민간 기업 같으면 꿈도 못 꿀 얘기다. 이 같은 수입과 인건비의 차액은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다. 개별 공기업이란 공유지를 황폐화하고 나아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국가 재정에 기회비용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영을 잘해서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 실은 더 큰 문제다. 공기업은 사적 부분에 맡길 수 없는 공공재를 다룬다. 일종의 독점기업이다. 독점은 많은 이윤을 낳는다. 그렇다면 좋은 경영 실적은 공기업의 능력이 아니라 진입 규제에 의한 지대(地代) 추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영 실적이 좋다고 그 과실로 잔치를 벌일 수 없는 이유다. 공기업이 경영을 잘해서 많은 이윤을 냈고 높은 급여를 받았다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재를 더 싸게 공급받거나 이용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공기업의 이해할 수 없는 고임금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착취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독점 재벌만 착취를 하는 줄 알았는데 공기업은 더 교묘하게 우리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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