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남우식, 황규봉이 주축을 이룬 서영무호 한국 고교야구 대표팀은 일본열도를 강타한다. 배짱 남우식의 커브는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황소 황규봉의 직구는 바위처럼 무거웠다. 만날 콜드게임 패 단골 호남도 스파이크를 동여맸다. 1973년 군산상고는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불멸의 드라마를 가을밤에 수놓으며 황금사자기를 호남선에 태웠다. 1974년 겨울,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의 지도까지 받은 광주일고는 무등산을 뜀박질하며 폐타이어를 두들겼다. 경북고와 광주일고는 1975년 봄 대통령배 결승에서 만났다. 세 번이나 좌측담장 너머까지 하얀 포물선을 그린 광주일고 김윤환의 힘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똑같은 인코스 하이볼을 던지는 성낙수의 배짱이었다. 성낙수는 홈런을 치고 3루를 도는 김윤환에게 글러브로 박수를 쳐줬다.
성낙수의 글러브가 떠오른 건 작년 봄 김범일 대구시장의 광주시청 강의였다.
"대구와 광주는 공통점이 많다. 내륙이라 그런지 아주 보수적이다. 산을 보고 자라 콧대가 세다.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 읽지 못하는 지역은 발전할 수 없다. 자존심 강한 두 도시가 서로 배우고 힘을 합쳐 중앙 집권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방분권의 참 꽃을 피우자"는 게 강연의 뼈대였다.
그는 광주출신 김선희를 대구시립미술관장으로 턱 앉히고, 대구시 공무원에게 "광주에 가서 무등산이 어떻게 국립공원이 되었는가"를 배우라고도 하였단다.
2005년 제2 정부종합전산센터를 광주에 뺏긴 대구는 2006년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했다. 대구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연 데 이어 '2013 세계에너지 총회'와 '2015 세계 물포럼'등 요리하기 따라 영양가 만점일 국제행사 유치로 발전의 디딤돌을 놓았다. 광주도 뛰었다. 도시 공공 디자인의 참 실천으로 도시 변신의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는 '2015 세계디자인 총회'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돈 들어가는 스포츠대회 개최라면 손사래를 치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개최를 놓고 경합하는 몇 남지 않은 스포츠 행사인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좁은 땅을 좁게만 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두뇌와 자본의 수도권 일극 집중이 완화될 기미가 없다. 지방은 기가 많이 죽어 있다. 축축한 파리를 떠나 고향인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며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폴 세잔의 오기와 투지도 별로 없다. 오지호도 이인성도 없다.
수도권 우월주의를 깨뜨리는 것은 야구가 유일하다. 야구가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이유이다. 모름지기 수도권과 지방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자극도 받고 발전도 있는 법이다. 혁신도시 건설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래도 잠재력이 있는 부산, 대구, 광주에 혁신기능을 부여하거나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나갔더라면 허허벌판에 건물 몇 채 덩그러니 서 있는 지금의 혁신도시 모습을 연출하고 있겠는가. 인간의 유산과 숨결을 먹고사는 도시가 몇 년간 뚝딱뚝딱 지어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지겠는가.
새마을운동을 도시르네상스 차원으로 승화시킨 창조적 도시혁신운동을 대구와 광주가 앞장서 실행해야 한다. 스러져가는 구도심을 녹색에너지와 문화예술, 공공 디자인을 접목시켜 살려내야 한다. 동네마다 주민 공동체 운동이 펼쳐지고 골목마다 옛 정취를 살려야 한다.
고령화로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치과산업클러스터도 대구와 광주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수도권 성형 위주 의료관광에 맞서자. '블루 골드'라는 물 분야 발전을 위해, 광주는 '물 과학', 대구는 '물 산업'중심의 국가연구기관 설립을 당당하게 요구하자. 오페라와 국악도 접목시키고, 양 도시 상징 도시공원도 만들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맥박을 듣게 하자.
대구에 사는 정호승의 시는 나에게 삶의 용기를 주었다. 포항에 사는 정일근의 시에서 우리 이웃들에 간곡한 애정을 보내는 법을 배웠다. 정치인은 무슨 목적으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일 뿐이다. 서로 북돋워줘 '지방의 시대'를 열어가는 질풍과 노도를 일으키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논쟁이 한국 철학사상의 씨줄이 되고 문화의 꽃을 피우는 날줄이 되었듯이.
신광조/광주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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