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恐喝)이란 말은 음습하고 사악한 느낌을 준다. 국어사전에는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대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거짓말'의 속어로도 쓰인다. 그러나 범죄나 법률 분야가 아니라 야구에서 쓰일 때는 그 의미가 무척 재미있다.
'공갈포'는 신체 조건이나 경력은 그럴듯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치지 못하고 헛스윙만 해대는 타자를 가리키는 속어다. 과거 삼성에도 공갈포 선수가 있었는데 그 큰 덩치에도 홈런은 고사하고 제대로 한 방을 때려주지 못해 팬이나 감독의 기대를 무참하게 짓밟곤 했다. '4번 타자감'이라는 평가를 수없이 들었지만 4번 타자는 거의 못 해본 채 은퇴한 것으로 기억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삼성에 첫 우승을 안겨준 마해영도 선수 생활 말년에는 '마공갈'이라 불리기도 했다. 물론 팬들의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전성기 때와는 달리 기아, LG로 옮겨가서는 두드러진 활약을 못했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예전에 공갈포라는 의미는 해줄 듯 해줄 듯하면서 결국에는 못 해주는 타자를 가리켰는데, 요즘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영향으로 '홈런 아니면 삼진' 식으로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슬러거를 지칭하기도 한다.
'공갈포'보다 훨씬 끔찍한 것은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자해공갈단'이 아닐까 싶다. 몇 명이 짜고 고의로 교통사고 따위를 일으키고는 금품을 뜯는 것인데, 범인 자신의 몸이나 차량을 희생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공갈을 놓을 때는 연극까지 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치찬란한 범죄의 전형이다. 자해공갈단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많지만 소설에 처음 등장시킨 작가는 최인호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 '벽 구멍으로'가 그것인데 화재로 원고가 소실돼 상세한 줄거리는 전해지지 않는다. 당시 최인호는 놀랍게도 서울고 2학년이었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해공갈단의 실체를 꿰뚫어봤다는 점에서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답다.
요즘 북한을 보면 공갈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곧바로 전쟁을 일으킬 듯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고,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적 손실을 자초하는 모습을 보면 '공갈포'보다는 '자해공갈단'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자기파괴적인 협박은 자해공갈단의 수법과 비슷하다. 거대한 '자해공갈 집단'을 같은 민족으로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슬프고도 끔찍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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