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생활 속 폭탄

입력 2013-04-23 07:12:53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대마도에 들른 적이 있다. 다들 초행길인데다 '일본 속 한국'이라는 대마도를 완전정복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차량을 렌트하고 구석구석 돌아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내비게이션에 목적지가 입력되지 않는 게 아닌가. "일본이 이제 망해가는구나.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자동차에 달아 장사를 하다니…. 원전사고 이후 정신을 못 차렸네." 일행들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때마침 일본 외무성이 독도 관련 망언을 쏟아내던 터라 애국심(?)까지 끓어올라 임진왜란부터 일제침략 등 여행 내내 일본의 만행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마도의 양끝을 잇는 이즈하라와 히타카츠 시. 평소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2시간이나 넘게 헤매고 다녔다. 여행 내내 이 같은 불편은 계속됐고 목적지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맬 때마다 일본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 불편한 여행을 마치고 차량을 반납하기 위해 렌터카 직원을 만난 일행들의 불만은 폭발하고 말았다. '렌트비를 돌려달라' '손님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 '일본에서는 이렇게 장사하나' 자초지종은 설명도 없이 시원한 막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당황한 직원이 내비게이션을 만지작거리고 차량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씩~' 웃는 게 아닌가. 일본인 직원의 설명은 이러했다. "주행 중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아 목적지 입력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차한 뒤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기고 나서야 작동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주정차 된 상황에서만 내비가 작동되도록 한 배려였다. 생활 속의 안전을 배려하고 지키려는 일본의 모습이었다.

'펑'펑'펑.' 지구촌이 각종 폭발 사고로 연일 들썩이고 있다.

며칠 전 미국 텍사스주 웨스트의 비료공장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형사고가 이어지면서 온 나라가 불안에 떨고 있다. 구미 삼성전자 불산 누출에 이어 여수산단 폭발사고 등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전쟁터나 다름없다.

특히 대구경북은 안전사각지대다. 1995년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과 2003년 중앙로역 지하철 화재의 악몽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지난해 말부터 발생한 대형 안전사고는 총 12건. 이중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사고는 절반에 해당하는 6건에 달한다. 지난해 9월 구미에선 불산 누출 사고로 23명의 사상자를 내고, 지역의 농축산업이 황폐해지는 참사를 겪었다. 올 초 상주 웅진폴리실리콘 염산 누출 사고, 3월 구미 LG실트론 불산혼합액 누출 사고와 그 사흘 뒤 구미 구미케미칼 염소가스 누출 사고가 잇따랐다.

포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22일 연산 60만t 규모의 제1파이넥스 공장에서 불이 나 작업자 1명이 연기를 마셔 부상을 입었고, 5일 후에는 포스코 제강공장에서 크레인 운전원이 크레인을 점검하던 중 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14일에는 삼성정밀화학 울산공장에서 염소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모두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人災)다. 위험 물질을 취급하면서도 경각심을 갖지 못한 것이 이유다. 교육을 하더라도 형식적인 교육에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할 뿐이다.

기업이나 산업계뿐만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폭탄'을 안고 있다. 가정에서는 쓰는 도시가스, LP가스, 부탄가스를 비롯해 청소할 때 쓰는 락스, 상처 소독에 싸이는 소독용 에탄올 등도 화학물질이다. 그러나 이들 물질이 위험하다고 생활하면서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들 물질의 관리가 소홀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핵폭발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잠수함을 보내 군함을 두 동강 내는 북한을 마주 보고 일상을 지내는 데 익숙해진 탓일까. 곳곳에서 '펑펑' 터지고 폭발물을 안고 살면서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안전불감증은 북핵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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