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학교는 명문이다"와 같이 규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 속에는 세상에는 명문이 아닌 학교가 존재하고, 우리 학교는 명문 학교와 명문이 아닌 학교의 경계선의 안쪽에 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식하는 말이 많아지면 경계선도 더 많아진다. "김 병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라고 한다면 세상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 신자라도 기독교가 아닌 사람, 기독교 신자라도 초코파이 먹으러 가끔씩 교회 오는 사람'이 있고, 김 병장은 그들과의 경계선에서 안쪽에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대상의 의미를 이와 같이 분해하고,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통해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이 소쉬르가 주창한 구조주의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화되다 보면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나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경계선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사람이 겪는 모든 괴로움은 바로 이런 경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요즘 인터넷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조금만 다르면 '수꼴'(수구꼴통), '좌좀'(좌익좀비)이라고 부르며 자신과는 다르다며 분명하게 경계를 긋고 있다.(스스로를 꼴통, 좀비라고 할 리 없으니까)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들 간의 의견차는 분명히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사람들 간에는 서로 의사소통을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을 좁혀서 의견의 합일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인과 꼴통, 인간과 좀비 사이에는 합일점을 찾을 수도 없으며, 말을 하면 할수록 배제, 배척, 억압, 경멸, 적대감, 무시, 무관심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만 증가할 뿐이다. 사실은 원래부터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그 경계 때문에 대립과 갈등, 그로 인한 괴로움, 스트레스를 겪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불교의 선승들은 "산은 산이다"와 같은 말을 화두로 제시하였다. "산은 산이다"는 말은 정의항과 피정의항이 같다. 이렇게 두면 산을 산 아닌 것과 구분을 하려고 해도 그 기준은 다시 산이기 때문에 경계를 나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은 '산'을 규정하려는 경계선 대신 '산'이라는 본질적인 대상을 바라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의 주인공이었던 김기덕 감독이 제작한 작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가 '영화는 영화다'이다. 제목의 이런 의미를 알고 보면 이 영화는 '영화와 현실' '영화 카메라와 관객의 눈'이라는 경계선에 대해 좀 더 풍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 김기덕 감독이 이번에는 '배우는 배우다'라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제목을 음미하면서 오늘 또 우리는 말로 어떤 마음의 경계선을 긋고 살았는지 성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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