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일제와 방곡령 협상했던 친일파 민종묵

입력 2013-04-22 08:53:46

1876년 일본과 수교 이후 쌀과 콩 등 우리 곡물은 계속 일본으로 유출됐다. 국내 곡물 비축량은 갈수록 부족, 식량난이 가중됐다. 흉년에 백성은 굶주렸다. 1889년 함경도관찰사 조병철, 조병식은 5월과 10월 방곡령을 내렸다. 조병식은 원산(元山)항을 통한 곡물 수출도 금지시켰다.

곡물거래로 재미 봤던 일본 무역상의 타격에 대한 일본 항의로 조정은 굴복, 조병식을 강원도관찰사로 쫓고 방곡령을 해제했다. 그러나 1890년 황해도관찰사 오준영도 방곡령을 내렸다. 일본은 이들 방곡령 피해 대책을 요구했다. 1892년 오늘부터 시작된 일본 공사 가지야마 데이스케와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종묵의 협상 이후 결국 1893년 돈을 물어주기로 합의했다.

명성황후 집안인 민종묵은 1897년 외부대신 때 절영도(絶影島)를 러시아에 조차해 주려다 독립협회 탄핵을 받았고 독립협회 해체에도 앞장섰다. 1905년 을사늑약 찬성 신하 처벌을 주장했으나 1910년 한일병합 후엔 일본 남작 작위와 은사공채도 받았다. 1911년엔 신문에 한일병합 1주년 축하 글도 실었다. 작위를 물려받은 아들(철훈)과 친일파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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