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의 재발견] <2부> 행복한 은퇴자들

입력 2013-04-20 08:00:00

③청도 '전원맨' 장호탁씨

기타는 장 씨에게 은퇴 후 행복을 가져다준 것 중 하나였다. 가끔은 밭에서 일하는 동네주민들을 위한 즉흥 라이브연주도 펼친다.
기타는 장 씨에게 은퇴 후 행복을 가져다준 것 중 하나였다. 가끔은 밭에서 일하는 동네주민들을 위한 즉흥 라이브연주도 펼친다.
전원으로 옮겨오면서 장호탁 씨 부부의 정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주변 모두가 화젯거리여서 대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자랑이다.
전원으로 옮겨오면서 장호탁 씨 부부의 정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주변 모두가 화젯거리여서 대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자랑이다.

'도시민의 52%가 은퇴 후에는 전원에서 살고 싶어한다.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경상도이고 경기도와 강원도, 전라도 순이다.'

뉴스를 보는 순간 이번 주 행복한 은퇴자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전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신나게 살아가는 은퇴자 찾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장호탁(62'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씨. 그는 치밀하게 전원생활을 준비했고, 기타 하나로 마을 할머니들의 '오빠'가 됐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꽃 천지였다. 팔조령을 넘는 순간 딴 세상이 펼쳐졌다. 복사꽃은 만발했고 공기는 다디달았다. 비현실적인 세계로 빨려가듯 그가 살고 있는 수야리는 큰길에서 멀었고 굽이굽이 돌았다. 눈이 시원한 수야못을 지나 한참 달리니 빨간색 지붕이 보였다.

마당은 보라색 꽃잔디와 튤립, 이름 모를 들꽃으로 야단이었다. 텃밭에는 냉이 시금치 마늘 상추들로 싱싱했다. 마루에 들어서니 수야못이 저 멀리 보이고 그 못을 배경으로 복사꽃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부인 이정순(58) 씨는 집 앞에서 캔 쑥이라며 쑥떡을 내민다.

섬유업계서 28년을 일하다 2007년 57세에 퇴직, 4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장씨 부부. 부러웠다.

-청도가 고향인가.

"아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냥 청도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하면 꼭 전원에서 살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

-대부분 전원생활을 꿈꾼다.

"용감한 사람만이 전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꿈만 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은퇴하기 4년 전부터 청도가 좋아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땅을 구하러 다녔다. 우연히 들른 수야리는 오지에 가까웠다. 한적해서 좋았고 저수지와 복사꽃에 반해 바로 계약했다. 아내도 전원을 좋아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쉬웠다."

-그리고 집을 지었나.

"은퇴한 그해인 2007년 10월부터 집을 지어서 2008년 2월에 완공했다. 그해 3월 보따리에 밥솥하고 이불을 챙겨서 온 것이 이 집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고 마루 가득 들어온 달빛은 황홀했다. 1년 동안 수성구 지산동에 있는 아파트와 반반 정도 나누어 생활했다. 1년 지나니 자신이 생겼다. 2009년 여름 지산동 집을 처분하고 여기로 완전히 옮겨왔다."

-집 짓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시골길은 좁아서 레미콘 등 큰 차가 드나들면 동네주민들의 담이나 나무가 다치기 쉽다. 이웃들과 첫 다툼도 대개 이때 생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건축업자도 이 동네 주민에게 소개받았고, 동네 주민이 소개해주는 땅을 샀다. 모두들 우호적이었다.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면 동네 주민에게 건축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면 좋을 것 같다."

-텃세 때문에 시골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어디든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그냥 양보하면 된다. 대개는 아주 사소한 것이어서 양보한다고 해서 큰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 온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집 마련 이외에 은퇴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나.

"은퇴하기 전 2년 전부터 기타를 배웠다. 퇴근 후 매일 밤 기타를 배웠고 집에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했다. 지금도 하루 서너 시간 기타를 잡고 있다. 기타가 은퇴 후 내 생활을 이렇게 즐겁고 바쁘게 만들 줄 몰랐다. 은퇴하기 전 취미생활은 꼭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 미리 배워두기를 권한다. "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을 위해 라이브 연주도 한다는데.

"하루는 기타 앰프를 꽂고 연습하는데 동네 주민이 전화를 했다. 농사짓는데 기타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다고 해서 그 후로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을 위해 즉흥 라이브연주를 한다. 볼륨을 크게 올려놓고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젖힌 후 연주하노라면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밭에서 일하는 이웃들이 관중이고 무대는 넓디넓은 우리 동네다. 내 기타소리에 밭과 산이 춤춘다. 신나지 않겠는가."

-이서면에는 전원주택자모임이 있는 걸로 들었다.

"20여 명의 회원이 있다. 대부분 대구에서 온 분들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정보도 주고받고 지역을 위해 좋은 일 하자며 머리를 맞댄다. 작은 일이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배도 해주고 있다. 미미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원생활에 대해 자녀들의 반응은?

"군불을 때는 황토방이 하나 있다. 딸아이의 산후조리를 그 방에서 했다. 좋아했다. 손자들이 오면 감도 따고 방울토마토도 직접 딴다. 땅을 파면서 지렁이도 만진다. 손자들에게 자연을 만지고 느낄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어 무엇보다 즐겁다."

-하루 일과를 알려달라.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겨울에는 늦게, 여름에는 일찍 일어나 풀 뽑고 물을 준다. 1, 2시간이 걸린다. 아침밥을 먹고 기타 연습하는 동안 아내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이것저것 배우느라 대구에 간다. 시골과 도시근교의 장점을 두루 누리며 살고 있는 셈이다."

-시골생활의 불편함은 없는가.

"요즈음 시골에도 보건소에 헬스클럽과 각종 운동시설에 잘 돼 있고 무료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아내는 거기서 탁구하고 나는 헬스를 한다. 매일 200명 정도가 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차로 30분 달리면 수성구에 도착할 수 있다. 대구에 좋은 공연이 있으면 자주 나가 즐긴다. 불편함이 없다."

-나이 들면 이곳 생활이 힘들 텐데….

"떠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거동이 아주 불편하면 옮겨야 하겠지만…."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꿈만 꾸면 그건 꿈일 뿐이다.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은퇴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땅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바로 전원으로 오지 말고 반반 정도의 생활을 해보고 자신이 생기면 옮길 것을 권한다. 되도록이면 50대 후반에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는 등 기반을 갖추려면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전원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내와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꽃과 나무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그 아름다움을 칭찬해준다.(그는 야생화 이름도 많이 알고 있었다) 자연이 모두 대화거리다.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덤이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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