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정리하고 귀촌…예술에 빠져 살아
신랑은 스물여섯, 신부는 스물한 살. 한동네에 살던 처녀 총각이 결혼했다. 38년째다. 이 부부의 삶은 독특하다. 각자 개성대로 살아간다. 정인표 촌장은 어느 날 갑자기 잘 나가던 철강회사의 셔트를 내린 후 귀촌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 숨어든다. 그리고 한학공부에 푹 빠져 있다. 아내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도예가로 전격 변신한다. 이 부부의 삶을 들여다본다. 정반대의 성향인 사람이 만나서 살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을 해보는 중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묘한 조화로움을 이어간다.
◆남편, 국제적 도예가들 초청 행사…시골이 시끌
정인표(64) 씨의 공식 직함은 '촌장'이다. 청도군 각북면에 있는 '비슬문화촌'의 주인이다. 정 촌장은 철강회사 대표였다. 고교 졸업 후 철강회사 직원으로 취직, 스물아홉 살에 사장이 됐다. 20여 년 동안 성장 가도를 달린다.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 때 부도위기에 처한다. 버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과감하게 정리한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부자가 되는 간단한 방법을 말한다. '남에게 줄 것은 최대한 버티고, 받을 것은 철저하게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촌장은 정반대의 사고를 가졌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다. 1998년 3월, 결국 재산을 털어 빚 잔치를 한 후 청도로 내려온다.
하지만 결코 새 삶은 쉽지 않았다. 자신이 미워져 견디기 어려웠다. 한때 죽음을 생각했다. 그때 동생(정덕표'58)이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 됐다. 동생은 "형! 어려운 일은 내가 다 뒷바라지해줄게, 걱정 하지마!"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수시로 경제적인 도움을 줬다. 동생의 그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목숨을 살렸다. 그는 "아직 동생에게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은 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끝없이 예술의 세계로 정진하는 아내를 묵묵히 뒷바라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작은 거인이다. 2001년 대형사고(?)를 친다. 시골의 조그만 동네에 세계의 쟁쟁한 도예가들을 초청, '국제라쿠 심포지엄'을 펼친다.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는 해냈다. 우리나라 작가들과 일본,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세계적인 라쿠 도예작가 수십 명이 나흘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지금도 그 당시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한학공부에 심취해 있다. 7년 전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한학 공부방에 한 번 따라갔다가 운명이 바뀌었다. "글 읽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대물림한 것 같다"고 한다. 요즘 대구 약전골목에 있는 '도산우리예절원'에서 소학과 명심보감, 주자가례 등 한문을 외우고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아내, 도예+조각 '도조' 30여년 묵묵히 한 우물
끝없이 자신의 작품세계만을 추구하는 이색 도예가다. 도예가로서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도자기 조각의 신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참 독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30여 년 동안 예술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직 작품의 탄생, 그것만 목표일 뿐이다.
김영자(59) 작가는 도예와 조각을 합친 의미인 '도조'에 관심이 많아 생활도자기를 한다. 대문 앞에 '연호생활도자연구소'란 나무간판을 달아 두었다. 그는 "접시와 병 등에 치중하는 도예는 흥미가 없다"며 "도예와 조각을 합친 도조(陶彫)의 예술세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소'를 주제로 한 라쿠 도조 작품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한평생 작품 생활을 하면서 딱 한 번 작품을 공개했다. 주변의 강력한 권유로 지난해 5월 자신의 집이자 작품실인 '연호생활도자연구소'에서 가까운 지인들만 초청, '김영자 도예전'을 열었다. 소를 의인화한 '천지만우변상도'(天地萬牛變像陶)를 주제로 했다. 소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세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전두환'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을 표현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오백나한상 같은 '108 우한상'(牛漢像)도 만들었다. 소의 다양한 표정에서 해학과 풍자를 느낄 수 있다. "작품에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고집스러운 작품 한 곳에 남편의 흔적도 있다. 아직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다. 겉으론 무관심한 척 하지만 남편에 대한 속정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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