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시집『가뜬한 잠』(창비, 2007)
상처도 견딜 수 있을 때까지가 상처다. 스스로가 상처를 치유할 의지가 없고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것은 치명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제아무리 꺾꽂이 번식이 가능한 존재라도 한겨울 들판에서는 살지 못하는 법이다.
봄에는 죽어 있던 나무와 풀이 되살아난다. 모체에서 떨어져 나와도 토양과 환경이 마련되면 뿌리 내리고 가지 뻗는다. 상처는 새로운 존재가 주체를 가지는 전초전이다. 뿌리 내리면 '꽃 됴코 여름 할' 것이다.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면 봄은 젊음의 길목까지다. 인생의 봄은 상처를 쉽게 입을 수 있지만 쉽게 아물기도 한다. 상처를 자양분으로 환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열매를 기약하는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상처는 희망 속에서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인생의 봄날인데도 햇살을 느끼지 못하고 일찍 상처에 굴복당한 어린 영혼들 소식을 자주 듣는다. 자연에게서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이 봄, 눈 내리고 춥지만 꽃들은 저렇게나 눈이 부시게 피어 있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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