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 행복한 은퇴자들 ②난타할아버지 박정수

입력 2013-04-13 07:12:25

늚음도 병도 고민도 두드려 날려버렸죠

북을 두드리는 박정수 씨의 모습은 나이를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힘과 신명이 넘친다. 그에게 난타는 젊음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활력소 같은 존재다.
북을 두드리는 박정수 씨의 모습은 나이를 찾아볼 수가 없을 만큼 힘과 신명이 넘친다. 그에게 난타는 젊음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활력소 같은 존재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박 씨 부부. 그 비결은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박 씨 부부. 그 비결은 서로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항암치료 중에도 난타를 가르쳤을 만큼 난타는 그에게 건강해야 할 이유였다. 그만큼 매혹적이라고 자랑한다.
항암치료 중에도 난타를 가르쳤을 만큼 난타는 그에게 건강해야 할 이유였다. 그만큼 매혹적이라고 자랑한다.

인터뷰 날짜 잡기가 힘들었다. 76세 할아버지의 일정이 빡빡해 시간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만나기로 한날, 빨간 티셔츠에 파란 점퍼를 입은 훤칠한 키의 주인공은 씩씩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활기가 넘쳤다.

박정수(76'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귀빈아파트) 씨. 그는 금융권에서 26년 동안 일하다 64세에 퇴직했다. 은퇴 후에는 여느 퇴직자처럼 친구들과 모여 술 마시고 화투 치며 시간을 죽였다.

그러던 2007년, 그의 나이 칠십에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 난타였다. 대구 달서구 노인종합복지관에 개설한 난타수업을 들으며 그는 짜릿함을 느꼈다. 신났다. 꽹과리를 즐겨 하던 그에게 북을 두드리는 난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3개월을 배웠다. 갈증이 몰려왔다. 더 배우고 싶어서 서울을 다녔고 다른 선생님도 찾았다. 열심히 배우고 두드렸다.

박 씨는 달서구 노인복지관에 난타동아리를 창단하고 각종 대회에 나가 큰 상도 받았다. 지금은 주변의 노인복지시설에서 공연을 하며 즐거움을 나누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난타를 가르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2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늙음도 병도 '두드림'으로 부숴버렸다는 박 씨의 난타 이야기가 궁금했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다. 비결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면 늙는다. 나는 일주일 내내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바쁘게 산다. 월요일엔 화원여성복지센터에서 10여 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난타수업을 하고, 화요일은 달서구 노인복지관에서 한우리 난타 동아리를 지도한다. 수'목요일은 자원봉사를 하는 아내(류순희'72)를 위해 운전기사가 되고, 금'토요일은 집 근처에 있는 수목원에서 아내와 함께 산책한다. 주말에는 초등학생들에게 난타를 가르치고 일요일은 교회에 다닌다. 집 밖으로 나오면 젊어진다. 그리고 즐겁다. 지금도 60대 후반 집에서 빈둥빈둥 보낸 시간이 제일 아깝다. 후회한다."

-난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난타는 인생 후반을 바꾸어 놓았다. 무의미하게 보냈던 은퇴 후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켰다. 생활에 활력이 생겼고 내 안에 있는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출구가 돼 주었다. 난타로 인해 나는 행복한 은퇴자가 됐고, 공연을 하면서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난타는 한마디로 나의 몸과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는 충전소 같은 역할을 한다."

-북을 두드리는 것이 힘들지 않나. 나이 들어서 하기 어려운 취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우리 가락 난타여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뛰면서 하지만 우리는 조용히 서서 두드리기 때문에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오십견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다. 우리 가락에 맞춰 북을 두드리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특히 여성들은 신나게 두드리다 보면 남편에 대한 미움도 자식에 대한 섭섭함도 한방에 날아간다며 좋아한다. 1년 정도 배우면 간단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봉사도 할 수 있어 좋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공연하고 있다."

-신명이 많아 보인다.

"노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방에 가면 밤새도록 놀아도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만큼 모르는 노래가 없다. '홍도야 우지마라'와 '나그네 설움'이 애창곡이다. 신명 많은 성격이 난타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흥이 많아 북을 두드리면 시간 가는 것도 잊는다. 난타 하는 내 모습에서 나이를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그의 노래실력은 거의 가수급이었다.)

-큰 병이 왔다. 지금은 아주 건강해 보이지만.

"2011년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 3기라고 했다. 바로 수술하고 6개월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 기간 동안 모두들 쉬라고 했지만 난타수업을 계속했다. 서서 하기 힘들면 앉아서 가르쳤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병을 이기는 큰 힘이 됐다. 수술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난타는 내가 환자임을 잊게 해주었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 항암치료를 끝내고 북 앞에 섰을 때 병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체중도 5㎏ 정도 늘었다. 수술 후 담배를 끊었고 교회를 다니게 됐다."

-수술 당시 가족들이 병원에서 화제가 됐다는데.

"4녀 1남을 두었다. 이 중 3명이 서울에 살고 있다. 대구에서 수술하고 입원한 내내 자식들 모두가 병원에서 합숙했다. 한 명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특히 퇴원할 때 아이들 모두가 담당의사와 간호사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작은 책을 만들어 전달했다. 담당의사는 이런 선물은 처음 받는다고 좋아했다. 나도 아내도 함께 편지를 썼다. 병을 이겨내는 데 자식들이 큰 힘이 된다."

-자녀들이 효자효녀다. 특별한 교육법이 있나.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간 적이 없다. 반드시 먹을 것을 사들고 가거나 읽을거리를 들고 갔다. 아이들 생일도 잊지 않고 꼭 챙겨주고 가족들과 함께했다. 지금도 아이들은 조카생일에도 5남매 모두가 선물을 하고 축하메시지를 보낼 만큼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어릴 때부터 서로 축하하고 챙겨주는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얼마 전 처제 생일도 챙겼다고 아내는 자랑했다.)

-꿈이 있다면.

"잘 늙고 싶다. 아내랑 서로서로 등 긁어주면서 건강하게 또 즐겁게 살고 싶다. 우리 가락 난타를 이끌어갈 후계자를 기르는 것도 꿈이다."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났다.

"나는 성질이 급하고 불 같다. 아내가 많이 참고 나에게 맞춰준다. 고맙게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양보하려고 한다. 져 주면 제일 편하다. 청소하고 무거운 것 들어주는 정도가 아내를 위해 하는 일의 전부다. 식성이 까다로워 한 달에 10번 이상 외식한다. 그게 금슬 좋은 부부라고 불리는 비결인 듯하다. 하하."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김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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