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정재형이 프랑스 유학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악보를 발견하고 열심히 복사를 하고 있는데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프랑스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다가와 야단을 쳐댄다. 할머니의 말은 왜 남의 것을 도둑질하느냐는 이야기다. 당시에는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작권이라는 가치가 프랑스인들에게 일상적 존경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꼭 프랑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유럽과 미국, 일본도 정도와 차이는 있지만, 저작권에 대해 높은 수준의 인식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도 인터넷이 보편화 된 시기부터 저작권이라는 말이 일반인들의 대화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존경이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법무법인에서 전화 오고, 경찰서 불려가고, 합의 보고 벌금 내고 이런 이야기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저작권과 관련한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가는 그림이 대부분이다.
흔히 '저파라치'라고 하는 저작권 파파라치들이 활개를 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연예인의 사진이나 음악 같은 저작물을 올리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저파라치에게서 연락이 온다. 이들은 참 집요한데 알아듣지도 못할 법률조항을 대고 합의를 요구한다. 성인들도 이게 뭔가 할 판에 초등학생이나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겁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다. 하지만, 일부 법무법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금의 상황은 곤란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저작권에 대해 재수 없으면 걸리고 벌금 내는 일로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저작권에 대한 숭고한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침해하지 말자는 교육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디어 하나 제공하자면 저작권 배포를 허용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 교육을 병행한다면 좋을 것이다. CCL은 창조와 배분이라는 가치 아래 2002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70여 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CCL운동은 단순하게 저작물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작물은 인류가 공유하고 존중해야 할 가치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CCL운동을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단순하게 온라인 상의 이용을 넘어 일상의 가치와 경제에 대한 공유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이 운동을 주도한 하버드 법대 교수 로렌스 레식의 바람이기도 하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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