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창조경제가 뭐꼬?

입력 2013-04-09 07:55:48

"과학과 경제의 융합을 의미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로 해석된다." "경기 부양과 서민 경제 활성화를 골자로 한 기존 경제정책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지역 금융계 인사들이 해석한 창조경제의 의미들이다. 심지어 "창조경제가 뭐꼬? 감을 못 잡겠다"라고 말하는 금융계 인사도 있다.

창조경제가 화두다. 구체적으로 박근혜식 창조경제가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을 종합해 보면 창조경제의 실체는 불분명한 상태다. 그렇다 보니 모호한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창조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대구시는 '창조 사과'를 도시 브랜드로 정하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색이 너무 난다" "창조만 붙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이쯤 되면 창조 공해다" 등의 비난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는 2001년 영국의 경영 전략가 존 호킨스에 의해 정립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를 '창조적 인간, 창조적 산업, 창조적 도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체제'로 정의했다. 창조경제가 박근혜노믹스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0월 대선 캠페인 때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이상이 지났지만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밑그림은 물론 정확한 개념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어 새 정부의 경제 철학을 두고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조경제는 뭇매를 맞고 있다. 특히 여당 의원들에게도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당'정'청 워크숍에서는 "뜬구름 잡는 식의 정책 아니냐" "대체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 등 창조경제의 모호함을 지적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달 1일 열린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창조경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의원들은 창조경제를 이끌 수장인 최 후보자 조차 정확한 개념을 알지 못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 정책은 명확성이 생명이다. 정책이 분명하게 제시되지 못하면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인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공무원들도 올바른 정책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관치 금융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이 지은 책 '지적 사기'는 2000년 국내에 번역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당시 광범위하게 퍼진 과학 용어의 남용과 사회과학에 자연과학적 개념을 난삽하게 끼워넣는 행태들을 지적 사기에 비유했다. 한마디로 지식인들이 있어 보이기 위해 구체적 타당성이 부족한 과학 개념을 사회과학에 끌어와 마구잡이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앨런 소칼이 지적한 지적 사기를 동양적으로 해석하면 견강부회(牽强附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담은 창조경제는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식 창조경제가 창조라는 그럴듯한 단어에 경제를 끌어 붙인 개념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철학을 담은 개념으로 자리를 잡을 것인지 여부는 정부 하기에 달려 있다. 경제가 어느 때보다 어렵다. 어려운 만큼 정치권과 경제 주체들이 소비적인 개념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 부양 의지를 밝힌 새 정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하루빨리 창조경제의 핵심 개념을 정리하고 이에 따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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