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2부> 행복한 은퇴자들 ①시골카페 주인 박계해 씨

입력 2013-04-05 07:17:20

후회 없냐고? 지금 이곳이 제일 중요하고 가치 있을 뿐

'남편이 귀농을 선언했을 때 나는 열여덟 권째 교무 수첩을 절반쯤 쓰고 있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기만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이삿짐을 쌌다. 떠나기로 한 바에야 떠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승용차를 타고 음악회에 가는 대신 마늘을 까며 라디오를 듣겠다는 정도의 각오를 했을 뿐 생계에 대한 뚜렷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박계해(53) 씨의 귀농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경남 양산 개운중학교 교사였던 박 씨는 2002년 가을 남편과 함께 경북 문경 어느 산골마을로 들어갔다. 고입 검정고시를 치른 딸과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을 부산에 남겨 둔 채….

시골 빈집을 빌려 '부산 새댁'으로 살았던 그녀는 우연히 본 오래된 집에 반해 2011년 문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주시 함창읍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버스정류장'이란 카페를 차렸다. 그날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운명이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이 집에 반해버린 것. 창에 붙어 있는 "세놓음"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목적지도 아닌 낯선 동네에 덜컹 내려버렸다. 집안을 구경하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계약했다.'

그날 딸은 그녀에게 "엄마 충동적으로 일 좀 만들지 마. 제발 철 좀 드세요"라고 했다.

3개월 뒤 카페 '버스정류장'은 거짓말처럼 만들어졌다. 이곳의 주인장 박계해 씨. 그녀는 머물고 떠나는 것이 일상인 '버스정류장'처럼 그렇게 쉽게 떠났고 미련도 없어 보였다.

-하고 싶으면 바로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즉흥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뿐 가만히 보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그려왔던 것들이다. 행복도 습관이다. 나는 행복해 지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을 참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참고 산다. 학교생활도 정말 행복했다. 심지어 '이렇게 아이들하고 열심히 노는데 월급도 주네'라며 감탄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학생들과 노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럴 무렵 학교에 사표를 내고 문경으로 왔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40만원의 월세를 내고 영주처럼 살고 있다."

-한적한 시골에 카페를 연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모두들 걱정했다. 무엇을 시작할 때 이것을 하면 얼마나 이익이 될까보다는 상대방이 얼마나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학교에서 늘 이것을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도 적어놓지 않았다. 돈벌이보다는 카페가 이 동네 놀이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수입과 지출을 적는다. 그리고 찻값도 올렸다. 점점 수익이 나고 있다.

-자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조금씩 틀에 맞추어지는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아주 약간 체계적으로 바뀌었다고 해두겠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내 카페에서 고물상 아저씨도, 연탄배달 아저씨도, 동네 할머니도 고급스럽게 쉬어 가기를 바란다. 물론 커피 값은 시골기준에서 비싸다. 하지만 농촌에서도 음악 듣고 정신적인 휴식을 취함으로써 오늘 하루 수고한 스스로에게 멋진 위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카페서 시낭송회도 열리고 즉석 음악회도 만들어진다."

-후회는 없나.

"지인들은 교직을 2년만 더 했더라면 연금받고 편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나라는 사람은 그냥 아니라고 생각하면 미련이 없다. 지금, 이곳이 제일 중요하고 가치 있을 뿐이다."

-아이들만 도시에 남겨두고 부부가 문경으로 갔는데….

"교육현장에 있을 때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가 문제 많은 경우를 자주 보았다. 아이들 그릇이 종지면 종지만 하게 자라주면 성공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닦달한다. 아이, 부모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부모는 문화적인 환경에 아이들을 노출을 시켜주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찾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두 아이 주변에 훌륭한 분들과 연결시켜 든든함을 주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딸과 아들 모두 대안학교를 다녔고 큰아이는 만화가로의 길을 가고, 둘째도 그림을 하고 있다.)

-귀농학교 강사로도 활동 중인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

"흔히 귀농이라고 하면 농사짓는 걸로 안다. 시골에서도 문화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걸 강조한다. 전직 직업을 잘 살리면 오히려 도시보다 더 큰 보람과 함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중학교에서 방과후 연극수업을 한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배웠던 연극을 농촌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할머니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면서 동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방과후 수업으로 수입도 생긴다."

-동네서 인기가 좋다. 비결은?

"이 카페는 6년 동안 비워져 있던 단독주택이었다. 동네분들이 캄캄한 집에 불이 켜져 정말 좋다고 했다. 개업하는 날 국화 화분도 갖다 주셨다. 농촌 생활 10여 년 동안 배운 것은 '이웃들 이야기 열심히 들어주기'다. 그것이 지역민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멀리서 온 손님들도 많은데 이 카페가 오래된 옛집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어 편안하다고 한다. 시간 감각이 없는 제3의 섹터에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있다고 좋아한다.

-시골 카페여서 재미있는 일도 많을 것 같다.

"고향을 찾은 자녀들에게 이끌려 오시는 어르신들이 종종 있다. 이렇게 해서 단골이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도시 커피숍에 가서도 기죽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시킨다고 자랑한다. 가끔은 할아버지들이 와서는 내 커피까지 시키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나를 다방마담처럼 여긴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10년 뒤 모습이 궁금하다.

"막 카페를 접고 조용한 산골에서 좋아하는 책 읽고, 영화 보고, 농사를 짓는 아낙이 돼 있을 것 같다. 오막살이 안에서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열심히 쓰고 있는 내 모습, 정말 기분 좋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