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에는 BMW(Bayerische Motoren Werke)박물관이 있다. 1916년 창립 이후 BMW가 생산한 100대 이상의 자동차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여러 전시물을 직접 조작해 볼 수 있다.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에 콘서트홀, 레스토랑 등 다양한 문화 공간까지 갖추고 있는 곳으로, 연간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명소다.
얼마 전 또래 공무원들과의 모임에서 삼성의 발원지 대구에 뮌헨의 BMW 같은 박물관이 생긴다면 어떨지 의견을 구한 적이 있다. 실제로 BMW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투자유치 분야 공무원은 삼성박물관 아이디어에 동감(同感)했다. 이를테면 삼성의 최신 휴대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다양한 문화 시설을 곁들인다면 삼성의 글로벌 네임 밸류와 결합해 BMW박물관 못지않은 방문객을 그러모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삼성박물관 아이디어를 처음 접한 건 벌써 1년 전이다. 우리 정부가 BMW박물관을 비롯한 선진국 모델들을 대상으로 '산업기술 문화공간'(가칭) 건립 사업을 막 확정했을 무렵이다. 현재 정부는 세계 최대 규모로, 최소 1조원 이상의 예산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기술 문화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는 '대구'에서 처음 나왔다. 지난 2009년 11월 대구테크노파크가 '산업기술 테마파크 조성 기본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 등으로 미뤄졌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구테크노파크 제안자는 사업 구상 단계부터 삼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삼성의 모태는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설립한 대구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정부 국책 사업이라는 명분과 대구의 인연을 조합해 삼성 투자를 유치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마침 대구는 경상북도청 이전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2014년 안동'예천 이전에 따라 공동화가 불가피한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도청 자리에 산업기술 문화공간(삼성박물관)을 조성하고 주변 제일모직 터와 연계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쉬운 현실은 대구시가 선수를 놓쳤다는 것이다. 범시민 운동까지 펼치며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든 울산시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산업기술 문화공간 유치에 대한 새누리당 공약화를 이끌어낸 것. 울산은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현대자동차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대구의 삼성박물관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아이디어를 먼저 내고도 넋 놓고 구경만 하다 주도권을 빼앗긴 탓이다. 대구시 간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새누리당이 울산 대선 공약으로 채택한 만큼 이제 와서 어쩌겠냐"거나 "정부가 공모 과정을 거칠 것이다. 대선공약이라고 하더라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어정쩡한 입장이 교차하고 있다. 그 와중에 삼성을 찾아가 의중을 파악하는 노력조차 전혀 없다.
21세기가 문화와 감성의 시대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기업 유치 대상을 꼭 제조업으로 한정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산업기술 문화공간(삼성박물관)은 대구 기업 유치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다. 게다가 대구에서 최초로 기획한 조 단위 국가 프로젝트를 아무 대가 없이 그냥 내주기에는 너무 배가 아프다. 대구시가 이대로 포기하고 묻어두기보다 삼성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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