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어느 제자의 항의

입력 2013-04-02 07:08:47

지난해 이맘때쯤이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제자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평생을 교직에 봉직하시다가 영예롭게 정년퇴직을 하신 우리 스승님을 모시고' 반창회(班窓會)를 하겠다나요. '그 옛날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 드리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꼭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삼십 오륙 년 전 산골 벽지 학교 육학년 교실에서 만난 제자들이었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장을 받아 든 그해 봄, 약간의 쌀과 취사도구, 옷가지, 그리고 책 몇 권 챙겨 넣은 배낭을 메고 찾아간 그 산골학교에서의 삼월은 얼마나 막막했었던지요. 동네와 뚝 떨어져 산기슭에 납작 엎드린 학교 단층 건물, 조례 대 양 옆의 키 큰 소나무는 늘 먼 하늘로 휘파람을 날리며 서성거리고, 봇물 터져 흘러넘치듯 울타리에 범람하던 개나리 노란 물결, 수업을 하다가 문득 교실 유리창 너머로 눈길을 주면 가슴에 불을 질러대던 뒷산의 진달래 붉은 무리, 그리고 밤마다 양철지붕 사택의 바람벽 안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시간들…. 하루에도 몇 번씩 선생 노릇 그만 두고 도회로 도망가 버릴까 망설이다가 녀석들과 정이 들면서 그 산자락에 털썩 주저앉게 되었지요.

시내 음식점에서 만난 제자들의 모습에도 세월의 자취가 완연했습니다. 오십대 초반으로 접어든 제자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이름을 확인하며 어릴 적 에피소드를 찾아내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도 즐거웠는지요. 살아가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 모범택시기사, 여행사 과장, 지구대 대장, 종교단체 홍보실장, 예비역 중령, 방역회사 직원,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은 다 벗어던지고서 넉살좋은 아줌마가 되어 나타난 여학생들…. 그리고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제자들한테서, 그 학교가 문을 닫아 지금은 폐가처럼 방치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소중한 추억의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내리는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제법 격식을 갖춘 의례가 진행되면서, 그 옛날 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확고한 신념으로 저희들을 사랑으로 가르쳐 배움의 바탕을 마련해 주셨을 뿐 아니라…'운운하는 감사패를 받을 때는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습니다. 제자들이 입을 모아 '스승의 은혜' 를 제창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공식적인 순서가 끝나고 술자리가 이어지자 분위기는 금방 흥겨움의 급물살을 탔습니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갔다가 벌 받은 일이나, 여학생 치마를 들추었다가 단체 기합을 받은 일, 가방에 넣어둔 뱀이 수업 중에 기어 나와 벌어진 소동 등, 온갖 야사를 들춰내고는 웃음폭탄을 터뜨려댔습니다.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신 술로 취기가 올라 아무나 손잡고 흥을 내며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데, 몇 사람 건너 앉았던 제자가 또 술잔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술을 따르면서 대뜸 "선생님, 그 때는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라며 생뚱맞게 운을 떼더니 혀 꼬부라진 소리로 사설을 풀어놓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다 압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참 열심히 가르쳐주신 것을. 그리고 저를 무척 아껴주신 것도요. 선생님은 늘 저를 글짓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시켜주셨는데, 끄윽. 저는 한 번도 상을 못 탔잖아요. 속으로 굉장히 미안했었어요. 그런데 그해 가을에 강변 공원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제가 쓴 시를 선생님이 많이 고쳐주셨잖아요. 기억나지요? 끄으윽. 그 시가 차상으로 뽑힌 것도 아시지요? 운동장 조회 때 교장 선생님의 칭찬을 듬뿍 받으며 상장을 전달 받던 날, 저는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쥐구멍 속으로 숨고 싶어요. 아들놈한테 잔소리하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목소리에 힘이 빠져요. 그 기억이 평생 내 발목을 잡고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어찌하면 이 마음의 족쇄를 벗을까요. 선생님…."

제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시적 표현의 작은 물꼬 하나 터주고 싶어서 그랬다면 변명이 될까요? 대회 때마다 '출장비는 꼬박꼬박 타가면서 어째 입상은 한 번도 못시키느냐'는 교장 선생님의 농담(?)에 압박을 받아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궁색하고 옹졸한 변명이겠습니까? 뼛속 깊이 후회한들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근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고개를 꺾는 고위 관료, 국회의원, 대학총장, 교수, 목사, 스타 강사, 인기 배우, 국가대표선수, 예술인들을 보노라면, 자꾸만 그 제자가 삼십오륙 년 만에 술에 의지해 쏟아내던 넋두리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꽃피는 봄인데도 씁쓸한 봄날입니다.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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