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스탠드' 하이브리드 장르 김지운…'스토커' 세련된 B급
할리우드는 영화의 본 고장이다. 이것은 결코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스크린의 대다수를 할리우드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 해서 자국에서 영화로 성공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할리우드 입성을 꿈꾼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세계로 통하는 길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국가대표 영화감독 박찬욱과 김지운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를 반긴 것도 두 감독이 세계적인 감독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제 이것은 현실이 되어간다.
김지운은 할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에서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지운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조용한 가족'의 코믹 호러, '반칙왕'의 코미디, '장화, 홍련'의 호러, '달콤한 인생'의 느와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서부극, '악마를 보았다'의 스릴러….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가 주연한 '라스트 스탠드'는 범죄 스릴러와 서부극과 카 액션을 섞어 놓았다. 즉 하이브리드 장르인데, 수많은 장르를 거치면서 고유한 스타일을 살짝 비틀면서 그만의 취향으로 스타일리시하게 그렸던 그가 이번에도 그의 특기를 모두 보여주었다. 자동차 씬은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만큼 통쾌하고, 소읍의 총격 장면은 힘이 넘쳐난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김지운이 놓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슬픈 인간의 운명과 한계에 대해 집착이라고 할 만큼 독하게 그리는 것이다. 때문에 김지운 영화에는 해피엔딩이 하나도 없다.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은 죽거나 상처 입거나 고통을 당한 채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단순하고도 같은 이야기를 김지운은 장르를 바꾸어 가면서 스타일리시하게 그렸다.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는 유명 배우를 통해 김지운이 또 하나의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노쇠한 그 슬픈 인간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시골 보안관의 삶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생을 돌아보게 한다. 해피엔딩이지만 웃을 수 없는 해피엔딩이 '라스트 스탠드'에 있는 것이다.
박찬욱은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에서, 그가 좋아하는 B급 영화 스타일을 세련되게, 한결같이 밀어붙인다. 그의 영화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복수와 구원, 죄의식은 여전히 변주된다. 박찬욱 영화의 인물들은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런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폭력을 동반한 복수를 하지만, 그 복수는 더욱 강한 죄의식을 불러와 대부분 파멸하고 만다. 이런 내용은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에서부터 '박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었다.
'스토커'는 박찬욱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석호필로 알려진 웬트워스 밀러의 것이다. 해서 기존의 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지만, 그것을 기어코 박찬욱의 영화로 만들어낸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등장한 삼촌, 이상한 매력을 지닌 그에게 점점 끌리게 되는 18살의 소녀. 그런데 그날 이후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도 그 사건에 동참하게 되면서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간의 고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찬욱은 매우 세련된 편집과, 기가 막히게 적절한 음악이라는 무기로 아주 매끄럽고 우아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단언컨대 박찬욱은 생소한 할리우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만 보면 두 사람의 할리우드 입성은 멋지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화는 산업이다.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매체.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는 북미 시장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국내에서도 개봉 후 열흘 동안 7만 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했다. 처참한 흥행 실패인 것이다. 박찬욱의 '스토커'는 이보다 상황이 낫다. 국내에서는 개봉 첫 주말 포함 24만 명이 들었고, 미국에서도 흥행 성적이 나쁘지는 않다. 적은 개봉관에서 시작해 관객 반응을 보며 확대해 가는 '롤아웃' 방식을 택한 이 영화는 첫주 반응이 좋아 앞으로 개봉관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더라도 '스토커'가 국내에서 박찬욱의 전작처럼 흥행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개봉 첫 주에 4위를 한 기록을 보면 총 관객 100만 명을 기록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는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두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김지운은 이미 여러 제작사와 차기작에 대해 논의 중이다. 할리우드에서도 김지운이 영화를 못 만든 것이 아니라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의 인기가 없고, 이 영화 개봉 직전에 총기 사건이 일어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제네거는 가정부와의 불륜 등으로 미국적 영웅의 이미지에 금이 간 상태이다. 박찬욱은 할리우드에서 자신이 서야 할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B급 스타일의 독특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이번 영화로 그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이미 칸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연출력과 영화 세계를 인정받은 감독 아닌가. 이제 남은 것은 차기작이다. 긍정적인 비평적 평가와 더불어 흥행에서도 좋은 기록을 남기는 것. 두 감독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목표는 분명히 보인다. 렛츠 고!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영화평론가 강성률 교수 영화계 진단
오늘부터 영화 이야기는 주목받는 영화평론가이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강성률 교수가 맡습니다. 강 교수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강성률의 줌 인'과 새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강 교수는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 '영화는 역사다' '친일영화의 해부학' '감독들 12' 등의 책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매일신문의 영화 면을 통해 우리 영화계의 현주소를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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