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레드 휘슬

입력 2013-02-27 11:10:22

1974년 11월, 미국 오클라호마 주 크레센트 시에서 한 여성이 시빅 자동차를 운전하다 지하 수로에 빠져 사망했다. 사망자는 플루토늄 원료 공장에서 일하던 캐런 실크우드. 경찰은 졸음운전 사고로 처리했지만 여러 의문점이 남았다. 동료들은 실크우드가 노조 활동을 통해 회사의 허술한 안전조치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방사능에 노출된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 했고, 차량에서 언론에 건네려던 관련 서류들이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타살 의혹을 주장했으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후 이 내부 고발자의 의문사를 다룬 여러 책들이 출판돼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실크우드'(1983년)도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실크우드'는 내부 고발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고발자 보호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크레센트 시 각급 학교에서는 지금도 영화 '실크우드'를 수업 필수 교재로 다루고 있다.

실크우드와 같은 내부 고발자를 흔히 딥 스로트(Deep Throat)나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라고 부른다. 딥 스로트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의 단서를 언론에 준 정보 제공자를 지칭하던 명칭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딥 스로트의 정체에 대해 끝내 침묵했으나 2005년 전 FBI 부국장 마크 펠트가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내부 비리 폭로에는 상당한 위험이 뒤따르고 때로는 진실을 폭로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부패방지법'을 제정해 공공기관의 내부 고발자 보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부 고발에 부정적인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아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대구 수성구청이 공무원의 부정부패 감시를 위해 익명 제보 시스템인 '레드 휘슬'을 도입했다. 중소기업청이 이미 '레드 휘슬'을 시행 중이고 다른 지자체들도 잇따라 도입할 계획이다. 누구나 웹사이트를 통해 금품 수수나 공금 횡령, 유용, 청탁 등 부정부패뿐 아니라 제도 개선, 미담 사례 등도 제보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제보자의 IP 정보가 남지 않고 추적 방지 등을 통해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게 특징이다. '레드 휘슬'이 내부 비리에 쉽게 눈감는 그릇된 조직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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