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교육, 자선활동 선대의 가르침 물려받아
"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교훈인 '나누는 마음'으로 평생 살았습니다."
형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부 고(故) 정행국 선생(건국훈장 애국장)과 부친 고(故) 정행돈 선생(건국훈장 애족장)에 이어 이달 21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은규(81) 몬시뇰.
정 몬시뇰의 주요 공적은 ▷안중근 의사 추모 사업, 대구가톨릭대 '안중근 연구소' 설치 등 애국애족 정신 고취 ▷시몬장학회를 통해 대구경북지역 고교'대학생, 독립운동가 후손과 후손 학생 등 498명에게 총 10억여 원의 장학금 지급 ▷2011년 매일신문사와 함께 모범 교사들을 발굴해 상패와 상금(4천만원)을 수여하는 정행돈 교육상 제정 ▷지역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을 발굴, 격려하기 위한 정재문 사회복지상 제정(상금 3천300만원) 등이다.
정 몬시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나라 사랑과 나눔의 정신, 검소함은 대를 이어 내려받은 것이다. 경북 칠곡 왜관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란 정 몬시뇰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북고 2학년 때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자원했다. 그러나 왜소하고 허약한 신체 때문에 귀가조치됐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이후 가톨릭 사제이자 교육자로 변신한 그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인성 교육'을 강조하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교훈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선친은 왜관 순심중'고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정 몬시뇰의 할아버지인 정재문 선생의 검소함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본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평생의 좌표가 되었다고 했다. 정재문 선생은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대고, 교육 및 자선 사업에 투자하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는 하루 한 끼에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밥상에 올려놓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선친인 정행돈 선생에 이어 정 몬시뇰의 현재 생활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가용도 없다. 휴대폰마저 없다. 한 달 용돈은 믿기지 않겠지만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사제들이 기거하는 공동주택(성 바오로 성당 옆 신부 사택)에 거주하며, 매일 1시간여 바로 앞에 있는 앞산 산책을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그 외 개인적인 모임도 별로 없다. 괜히 쓸데없는 데 시간과 돈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정 몬시뇰은 최근 또 다른 꿈을 실천하고 있다. 해외 봉사 사업이다. 김수환 추기경을 모시는 동안 가보았던 아프리카의 처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모잠비크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시몬장학회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최빈곤 국가인 모잠비크에 집 지어주기, 학교 설립 등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원금액을 조금씩 더 늘려나갈 것입니다."
시몬장학회가 각종 사업 자금으로 1년에 쓰는 돈은 2억원 정도된다. 마음을 비우고 남을 돕다 보니 오히려 마음은 더욱더 커지고 부자가 된다는 정 몬시뇰이다. 장학재단의 규모도 많은 분의 도움으로 커졌다. 이자만으로 사업 자금을 충당한다.
한편 정 몬시뇰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 법학을 공부하고 신학과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총장, 광주가톨릭대 교수, 로마 한인신학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95년에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원래 주교들과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고위성직자를 이르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사제 가운데 교황청으로부터 이 칭호를 받은 사람을 일컫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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