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무총리 인선이 난항을 겪으면서 총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직책은 영의정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영의정은 왕이 임명하는 최고의 직책이었고 그만큼 지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역임한 인물이 있다. 바로 오리(梧里) 대감으로 알려진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 시대 3대에 걸쳐 진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한 정권마다 두 번씩. 이원익이 여러 차례 영의정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원익이 활동한 시대는 당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대였다. 이원익은 남인이긴 했지만 당파적인 색깔이 강하지 않았으며, 중도적 노선을 견지하였다. 이원익이 임진왜란의 참전 경험과 중국어에 능통한 외교적 능력으로 당시의 외교적 현안을 해결하고 1599년 1월 귀국하자 선조는 좌의정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승진시켰다. 1599년 5월 북인 이이첨 등과의 대립으로 물러나 동호(東湖)에 일시 거주했으나, 선조는 9월에 다시 그를 영의정으로 삼았다. 이 무렵 이원익은 사당화(私黨化)하여 공(公)을 저버리는 집권당 북인을 비판하였다. 이원익은 '천하의 일이나 국가의 일은 다만 공(公)이냐 사(私)냐 하는 두 글자에 달려 있을 뿐'이라며 '사당(私黨)이 되면 나랏일은 끝장'이라고 하면서 무엇보다 공(公)을 우선할 것을 강조하였다.
1608년 광해군의 즉위와 더불어 북인정권 시대가 열렸지만, 이원익은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내외의 신망이 두텁고 관료로서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이원익이 가장 크게 비중을 둔 것은 세제 개혁이었다. 왜란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라 백성들은 각종 세금을 내는 것에 부담을 많이 느꼈다. 그중에서도 공납(貢納)의 부담이 가장 컸다. 이원익은 공납의 부담을 약화시키는 방안으로 지주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대동법(大同法)을 적극 주장했고, 경기도 일대에 대동법을 실시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임해군의 처형과 영창대군 살해에 이어 인목대비의 유폐가 이어지면서 이원익은 북인정권과 선을 그으면서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이원익은 여러 차례 병을 칭탁하고 영의정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으나, 광해군은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1609년 8월에는 무려 23차례의 사직서를 올린 끝에 영의정 직에서 물러날 수 있었으나, 1611년 9월 광해군은 이원익을 다시 영의정으로 불렀다. 그의 국정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광해군 말년 이원익은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유배의 길에 올랐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경기도 여강(驪江)의 앙덕리에 거처하였다. 초가 두어 칸에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고 처자들은 하루걸러 끼니를 먹을 정도로 빈한했다고 한다. 지금의 국회 청문회에서 늘 되풀이되는 공직자의 재산 축재에 경종을 울리는 장면이다.
1623년 광해군과 북인정권을 타도하는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서인정권이 수립되었다. 인조 역시 이원익을 영의정에 지명했다. 다섯 번째의 영의정이었다. 급작스런 정권 교체에 대해 불안해하던 신료들이나 백성들에게 이원익 카드는 안정감 있게 자리를 잡았다. 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은 남인의 원로 이원익을 영의정에 추대하여 반정의 명분도 강화되고 향후 정국의 원활한 운영도 꾀하였다. 이원익은 인조 대에도 한 차례 사직을 한 끝에 1625년(인조 3) 78세의 나이로 마지막으로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영의정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원익은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 1627년 1월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을 가면서 이원익을 도체찰사로 삼았다. 이원익이 노쇠함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인조는 '누워서 장수들을 통솔해도 될 것'이라며 그의 능력을 깊이 신뢰하였다.
선조에서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정치'경제'사회'국방의 다양한 현안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수습하는 역할을 한 이원익. 당쟁의 시대에 당파에 기울지 않고 국가의 현안 해결을 최우선으로 한 합리적인 처신은 3대에 걸쳐 여섯 번이나 영의정을 맡는 '진기록'을 세우게 했다. 국부(國富)와 민생, 복지가 무엇보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영원한 영의정' 이원익이 그리워진다.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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