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에 시끌벅적한 축제가 열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딴 '블룸(Bloom)의 날'이다. 1904년 이날, 더블린을 무대로 외판원인 블룸의 하루 동안 일상을 묘사한 이 소설은 20세기 최고의 영문 소설로 일컬어지긴 하지만, 워낙 난해해 통독한 사람이 드문 것으로도 유명하다. 축제는 소설의 유명세로 인해 시작됐지만, 아일랜드인의 자긍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날 시민들은 밀짚모자와 긴 스커트 같은 전통 복장을 하고 기네스 흑맥주를 마시면서 블룸의 행적을 좇아간다. 소설 한 편이 도시를 더 빛나게 해준 사례이지만, 작가가 자신의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반면 황석영의 수작 '삼포 가는 길'에서의 삼포(森浦)는 가상의 지명이다. 소설 속에서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적 안식처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한국 어디에도 없다.(강은철의 노래 삼포 가는 길은 진해 옹천동의 어촌 동네 삼포마을을 소재로 한 것이고 노래비가 있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도 마찬가지다. 무진(霧津)은 서울이라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이상과 순수의 공간으로 설정돼 있어 실제 지명이 아니다.
'삼포'와 '무진'은 이상향을 표현하는 공간이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한국 작가들은 실제 지명이나 자신의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는 데 무척 인색하다. 이문열의 걸작 '사람의 아들'에서도 무대가 대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영어 스펠링 'D'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명칭을 쓰고 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특정 지역을 대변하거나 한정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싫기 때문인데, 한국 사람 전체의 빈약한 뿌리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성석제의 신작 소설 '단 한 번의 연애'(휴먼&북스 간)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포항 구룡포를 주무대로 하고 죽도시장과 보경사, 포스코 등 포항의 명소들이 대거 등장해 정감을 더해준다. 구룡포 고래잡이 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운명적인 연애사를 섬세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미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포항을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좋다. 굳이 대구경북이 아니더라도, 실제 지명 혹은 자신의 고향을 무대로 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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