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2천32만 명이다. 대구경북 가입자도 180만 명에 이른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03년 7월 1천700만 명이었던 가입자는 2007년 7월 1천800만 명, 2010년 8월 1천900만 명, 지난해 6월 2천만 명을 돌파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는 소득신고자도 2007년 1천316만 명에서 2008년 1천331만 명, 2009년 1천357만2천 명, 2010년 1천412만9천 명, 2011년 1천498만7천 명으로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이는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이 서민들의 노후 대책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요즘 국민연금 가입자의 마음은 불편하다. 만 60세였던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만 65세까지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연령을 만 68세까지 높여야 한다는 보고서까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기초노령연금 인상 재원으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오면서 가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퇴직 후 소득 공백기간 더 길어져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늘어나 만 65세까지 높아진다. ▷1953∼1956년생은 만 61세 ▷1957∼1960년생은 만 62세 ▷1961∼1964년생은 만 63세 ▷1965∼1968년생은 만 64세 ▷1969년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로 바뀐다.
조기노령연금 신청 연령도 상향 조정된다. 조기노령연금은 수령 개시 연령 이전에 미리 국민연금을 받는 제도다. 수령 시기가 당겨지는 만큼 수령액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지만 조기 퇴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진 사람들에게는 생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조기노령연금은 지난해까지 만 55세부터 신청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출생시기별로 만 56∼60세가 돼야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국민연금공단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정이라는 입장이다. 자식들의 봉양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노후 대책으로 국민연금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평균 수명 증가에 맞춰 수령 연령도 조정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가입자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높아질수록 은퇴 후 소득 공백기간도 길어져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초 퇴직을 한 서모(55) 씨는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1년 가까이 쉬고 있다. 그는 "퇴직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얼마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연금을 받는 시기마저 늦춰져 퇴직 후에도 일을 하지 않으면 가정 경제가 파탄 날 상황이다. 국민연금제도가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구조로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 지급 시기는 늦춰진 반면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면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최종 직장 퇴직 연령은 2011년 만 54세에서 지난해 만 53세로 1년 빨라졌다. 1969년생이 만 53세에 퇴직한다면 최대 12년 동안 기다려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는 김모(48) 씨. 지난해 인사에서 승진을 하지 못해 퇴직 압력을 받고 있는 그는 퇴직 후가 더 걱정이다. 김 씨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가 만 60세에서 64세로 늘어났다. 만일 올해 퇴직을 한다면 15년을 기다려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퇴직 시점과 국민연금을 받는 시점의 간극이 더 벌어지면서 노후를 대비하는 국민연금의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 실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연금 수급 시점을 늦추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고령자 일자리와 정년 연장 문제를 함께 논의해 공백기간을 줄이고 국민의 이해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봉?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 인상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인상 재원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일부 충당하는 안이 거론되면서 재원 부담을 국민연금에 떠넘긴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밝힌 기초노령연금 예산은 올해 4조3천120억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도입 시 예상 소요액은 2014년 11조원, 2015년 17조원으로 늘어난다. 새누리당 공약집에 있는 재원 마련 방안에는 28조에 달하는 기초노령연금 예산 가운데 8조4천여억원을 국민연금에서 충당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가입자가 보험료를 내고 노후에 돌려받는 사회보험인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지급하던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전용한다면 국민연금 재원 고갈을 가속화시켜 가입자들이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2008년 재정추계에 따르면 2060년에는 국민연금의 재원이 완전히 고갈된다. 그나마 이는 낙관적인 전망에 따른 추산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재원 고갈 시점을 2053년으로 추정했고,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2049년이면 재원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르면 40년 내로 국민에게 연금을 줄 돈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젊은층들의 반발이 심해 자칫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직장인 최모(32) 씨는 "기초노령연금이 노인복지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원 고갈 우려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부실화를 부추겨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기초노령연금 인상 재원은 정부가 부담을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연금 등 다른 연금은 놔둔 채 국민연금을 통해 기초노령연금 재원을 충당하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연금을 봉으로 취급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 노조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달 11일 국민연금 노조는 성명을 내고 기초연금 재원은 국민연금 보험료가 아니라 조세로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정부가 국민연금 고갈을 막겠다며 2007년 지급액을 33%나 낮춰 놓고 기초노령연금 인상 재원을 국민연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필요한 기초노령연금 재원은 부유세 도입으로 마련하고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방안은 사회적 합의를 먼저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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