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정치 이슈]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입력 2013-01-26 08:00:00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한국에선 사례 많지 않아

이명박 대통령이 이달 22일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이하 택시법)에 대해 국회의 재의결을 요구했다.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 소속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 차원에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3조는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국회에서 의결돼 정부로 이송된 지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법률안이 위헌이거나 집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역대 대통령들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법안이 위헌인 경우 ▷대통령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경우 ▷현명하지 않은 공공정책인 경우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되는 경우 등에 한해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 재의결을 요구하면서 "국제규범에도 맞지 않고 다른 나라에도 전례가 없는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밝혔다.

더불어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택시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택시법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며 다른 방법을 통해 정상화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여야는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면서도 택시법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에 앞서 표를 의식해 특정직역에 세금을 퍼주는 정책에 야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즉각적인 재의결 의지를 비쳤던 새누리당은 정부의 대응을 지켜본 뒤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부 입장도 있고 대체입법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니 그 내용을 봐야 할 것"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민주통합당은 당초 재의결 강행 의지를 표방했지만 반대 여론이 일자 일단 '유보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24일 택시법과 관련, 정부의 법안 등에 대한 검토 등을 거쳐 당론을 결정키로 했다.

정부의 거부권 행사 후 재의결을 추진하겠다는 기존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이에 따라 1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재의결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앞서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달 22일 정부의 택시법 거부권 행사와 관련, "거부권 행사는 사회적 합의를 깨고 갈등을 촉발시킬 뿐"이라며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에 따라 반드시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가 택시법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가운데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번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헌정 이후 72번째다. 현 정부에선 첫 거부권 행사이며 앞서 노무현 정부에선 모두 6차례 거부권 행사가 있었다.

지난 1948년 9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에 대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시작으로 제헌국회 14건을 비롯해 2대 국회 25건, 3대 국회 3건, 4대 국회 3건, 5대 국회 8건, 6대 국회 1건, 7대 국회 3건, 9대 국회 1건, 13대 국회 7건, 16대 국회 4건, 17대 국회 2건, 19대 국회 1건의 법률안이 거부됐다. 8'10'11'12'14'15'18대 국회에선 거부권 행사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우리나라는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부권 행사 사례가 적었다. 미국의 경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임 기간(12년) 중 635회나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가 적었던 이유는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행정부가 법안을 발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의회와 감정싸움을 벌이기보다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의 수정안(정부 발의)을 국회에 다시 제출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는 한국과 미국 모두 원내지형이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나타났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정치세력이 충돌할 경우 나타나는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인 셈이다.

국회 관계자는 "헌법이 국회의 재의결로 법률로서의 지위를 확정지을 수 있도록 규정한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한정적 권한"이라며 "대통령이 법률 조문의 일부에 대해 재의결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한 헌법규정도 의회의 권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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