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부부싸움/ 이성주 지음/ 애플북스 펴냄
요즘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부부간에도 사랑과 분노, 질투와 애정, 불만과 행복이 있었다. 왕과 왕비 역시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와 그 반려자라는 지위와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감정이 있었다.
다소 제목이 긴 이 책 '조선의 운명을 결정한 왕들의 부부싸움'은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당시 왕과 왕비의 부부생활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당대의 기록자들은 내밀한 부부관계를 가감 없이 기록했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부분에는 힌트를 남겨 다음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는 왕과 왕비이기 전에 남편과 아내로서의 삶을 살았고, 남들 보기에 '막장'이라고 해도 좋을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다만 평범한 부부들과 달리 그 싸움의 스케일이 컸다. 왕과 왕비의 싸움은 국가 단위의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고, 때로는 정치적 쟁점이 부부생활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의 결혼, 특히 왕의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 정치적 이해관계가 큰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 때 효빈 김씨는 원경왕후 민씨의 몸종이었다가 태종의 승은을 입은 사람이다. 효빈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왕후 민씨는 분개했다. 남편이 자신의 몸종과 눈이 맞아 아기를 가진 것이다. 민씨는 효빈을 옛날 집 행랑방으로 내쫓았고, 해산달이 가까워지자 방앗간에 내동댕이쳤다. 이도 모자라 아이를 낳자마자 이불도 빼앗은 뒤 오두막에 내팽개쳤다. 7일이 지나도 아이가 죽지 않자 삭풍이 몰아치는 12월에 소에 태워 교하(交河)의 집으로 보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분노했다.
태종은 "핏덩어리가 기어다니는 것을 모두 불쌍히 여기는데, 여러 민(閔)가 음참하고 교활하여 여러 방법으로 꾀를 내어 반드시 사지(死地)에 두고자 하였으니, (중략) 그 핏덩어리에게 하는 짓이 이와 같이 극악하였다"라고 말했다.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불화는 단지 두 사람 간 애증의 문제는 아니었다. 태종은 외척 발호와 권력누수를 염려했고, 민씨 가문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는 민무구, 민무질을 죽이고(표면상으로는 자살), 민씨 가문을 풍비박산 냈다. 왕후 민씨는 자기 집안이 정권창출에 기여한 만큼 공신으로 인정해주기를 원했고, 태종은 이를 거부했다. 나아가 태종은 후궁을 법제화해 왕후 민씨를 무시했고, 이들 부부는 왕위에 오른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일반적으로 왕과 왕비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원경왕후는 자기 집안의 정권창출 공을 내세워 당당히 자기의견을 말하고, 분노하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태종은 반응은 응징이었다.
문종은 조용하고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여자를 보는 눈이 매우 까다로웠다. 아무리 예쁜 여자를 세자빈으로 봉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첫 번째 부인 봉씨는 예뻤으나 괄괄한 성격이라 문종과 맞지 않았다. 세자였던 문종은 봉씨를 멀리했고, 봉씨는 급기야 동성연애를 하다가 발각돼 쫓겨났다.
아버지 세종은 대를 잇기 위해 여러 여자를 번갈아 세자빈으로 뽑았지만 문종은 데면데면했다. 세종은 '내가 상시로 가르치고 타이르기는 하나, 침실의 일까지 어찌 자식에게 다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문종은 26세가 되어서야 아들 단종을 낳았다. 아버지 세종이 18세에 문종을 낳은 것에 비하면 한참 늦었다. 단종의 비극은 아버지가 자식을 늦게 본 데다 일찍 죽는 바람에 잉태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책은 조선시대 7왕, 즉 태종, 세종, 문종, 성종, 중종, 선조, 숙종과 그들의 '꽤 많은' 여인들 간의 부부싸움을 통해 권력투쟁과 애증관계를 들여다본다. 속 좁은 남편의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과 이기심이 드러나기도 하고, 질투에 눈이 멀고 남편의 불성실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여린 아내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왕과 왕비라는 특별한 지위에 있었지만 여느 평범한 부부들처럼 싸움 뒤엔 냉각기를 가졌고, 심한 경우에는 이혼을 결심하고 조정위원회(각 시대의 조정 신료들)를 찾기도 했다. 남편들은 아내의 잘못을 하소연하며 '못살겠다'고 소리를 질렀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잘 아는 대소신료들은 "싫어도 참고 살아야 한다"며 임금을 달래기도 했다. 332쪽, 1만5천8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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