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간 이식 모친 간병하는 김형식 씨

입력 2013-01-23 07:37:03

"어머니 회복 위해서라면…어떤 난관도 헤쳐야죠"

남편으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정영순(54
남편으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정영순(54'사진 오른쪽) 씨가 대구가톨릭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들 김형식(28) 씨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조심, 살살… 엄마, 다리에 힘줘 보세요."

21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김형식(28'경북 안동시 태화동) 씨는 어머니 정영순(54) 씨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었다. 형식 씨는 "의사 선생님께서 자주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 하루에 한두 번은 잠깐이라도 침대에서 내려와 걷는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8일간 이식을 받은 정 씨는 회복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는 중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회복돼 일반 병실로 갈 준비를 한다는데 정 씨는 회복이 더딘 편이다. 간 이식 수술을 받기엔 나이가 든 탓이다.

◆갑자기 쓰러지다

정 씨가 쓰러진 건 지난해 8월이었다. 갑자기 몸에 열이 나면서 다리부터 몸 색깔이 까매지더니 급기야는 쓰러졌다. 안동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옮긴 정 씨의 병명은 '간경화가 심해져 온 간성혼수'였다. 평소 B형 간염을 앓고 있었지만, 치료약을 계속 먹어왔던 터라 갑자기 쓰러져 목숨이 위험한 상태까지 갈 줄은 전혀 몰랐다.

안동의 병원에서는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고 말했지만 당장 간 이식을 해줄 사람도, 간 이식을 할 돈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형식 씨는 "저의 간을 어머니께 이식해 드리면 좋았겠지만, 저도 B형 간염 보균자라 이식을 할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의 친척들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여서 간을 기증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아내가 쓰러져 있는데도 술을 마시고 병원에 찾아와 술주정과 행패를 부리기도 해 김 씨는 답답하기만 했다.

"어머니가 쓰러져 계신 데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병원에 와선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폭언했어요. 아버지를 겨우 달래고 달래 병실 밖으로 내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안 그래도 힘든데 아버지까지 저러시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하늘이 도왔는지 간을 이식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너무 기뻤지만, 문제가 있었다. 기증자와 정 씨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정 씨는 이래저래 방법을 궁리했고 '혈장교환술'을 이용한 간 이식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됐다.

◆뜻밖의 기증자

"어머니께 간을 주신 기증자 분이 누군지 아세요? 아버지였어요."

정 씨에게 간을 이식해 주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남편 김홍섭(57) 씨였다. 아들 형식 씨는 아버지가 어머니께 간 이식을 해 주기로 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짜 간 이식을 해 주실까' 하고 수술 직전까지 의심하기도 했다. 형식 씨의 기억에는 아버지가 늘 술에 취한 채 어머니와 다투던 모습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김 씨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의 건설현장 근로자로 일했었다. 당시 해외 건설 노동자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말에 김 씨도 해외로 나갔고, 벌어온 돈을 모두 동생들의 학비로 사용했다. 그래서 김 씨의 손에 남은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 씨 또한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찍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공장 여공, 가게 점원 등 이일 저일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던 정 씨는 중매를 통해 김 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형편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김 씨는 최근까지 계속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해 왔고, 형식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광고디자인 관련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태왔지만 살림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김 씨는 한국에 돌아오면서 술을 달고 살았다. 정 씨가 쓰러져 입원해 있는 상황에도 음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김 씨가 아내 정 씨에게 간 이식을 결심했을 때 형식 씨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하기도 했던 것이다.

"술을 많이 드셨는데도 간 이식이 가능할 정도로 간이 건강했습니다. 남들보다 간이 크고 튼튼한 편이라 하더군요. 평생 싸우시면서도 어머니에게 간 이식을 결심하신 거 보면 아마 아버지도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께 미안하셨나 봐요."

◆수술은 잘됐는데'''

형식 씨는 지금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하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상태다. 간 이식을 한 아버지 김 씨 역시 당장 일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현재로선 형식 씨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 400만원으로 생활비와 병원비를 해결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정 씨의 간 이식 수술 후 중간정산한 병원비는 2천300만원 정도로, 모아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동의 집을 팔아도 겨우 중간정산한 병원비 정도만 해결할 수 있는 정도다. 앞으로 더 나올 병원비는 생각할 여유도 없다.

형식 씨는 "퇴원을 하더라도 면역억제제와 같은 약값이 몇십 만원씩 들어가는데다 퇴원 후 지낼 집도 간 이식 환자가 지낼 수 있도록 멸균처리를 하는 등 환경을 맞춰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형식 씨는 긴급의료지원비와 같은 정부의 의료비 보조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이마저도 자격이 안 돼 도움을 받지 못했다. 동사무소를 통해 알아봤더니 가족이 가진 계좌에 현금이 300만원 이상 있다는 이유로 긴급의료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은 것.

형식 씨는 어머니가 회복해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다시 일자리를 찾을 작정이다. 전문대 졸업 후 2010년부터 한 인쇄디자인 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형식 씨는 지난해 '좀 더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낮에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 관련 서적을 보면서 독학으로 디자인공부를 다시 시작했었지만, 그 계획도 잠시 미뤄야 한다.

형식 씨는 어머니가 침대에서 쉽게 일어서지 못할 때나 식사를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운동을 하고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데 어머니가 계속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잦다.

"하루는 운동하자고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는데 어머니가 우시더라고요. 너무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하시면서 우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일으켜 세워야 했어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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