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읍내 중학교에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었다. 흔히 자동차가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비포장길을 낭만적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막상 그 길을 다녀보면 죽을 맛이다. 가로수까지 심어져 있는 신작로였지만 비포장이라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갈길은 두 바퀴로 균형을 잡아 다니는 자전거엔 아주 비호의적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레이더란 중장비가 자갈을 도로 안쪽으로 그러모으면서 지나간 가장자리 길을 선호하였다. 거기는 비교적 노면이 매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옆으로 난 도랑에 빠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고도 그 좁은 갓길로 다녔던 것은 스릴을 즐기는 측면도 있었다. 넓어 봤자 50㎝ 폭의 그 길을 우리는 용케도 잘 다녔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때가 있는 법.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 따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평소보다 과속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장마 때 파인 홈을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전거 앞바퀴는 미끄러져 도랑으로 빠져버리고 그만 길바닥에 코방아를 찧고 말았다. 하늘에서 별이 번쩍거렸다. 그렇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 자전거부터 끌어올렸다. 핸들에 달린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콧구멍 주변과 입술 위쪽 부분이 벗겨져 번들거렸다. 다행히 코뼈는 다치지 않았고 앞니도 무사한 것 같았다. 입술은 터진 채 부풀어 올라 금방 '돼지 당나발' 같은 모습이 되었다. 몹시 쓰리고 아팠지만 일단은 인근 큰 감나무가 있던 집 우물가로 가서 흙먼지로 얼룩진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씻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달렸다. 입술은 계속 부풀어 올라, 내 눈에도 커다랗게 보였다. 급기야 입술마저 들려 이가 드러났다. 아랫입술로 퉁퉁 부은 윗입술을 덮으려 했지만 쓰리고 진물이 나서 여의치가 않았다. 찬바람에 상처는 상처대로 아리고 이는 얼마나 시리던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을 어린 나이에 제대로 실감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우스꽝스런 모습에 급우들은 뒤집어지고, 선생님도 웃느라고 수업이 중단되는 등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웬만한 시련쯤은 만나도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왔다. 유독 굴곡 많던 삶 고비 고비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텨왔던 것은 아마 강한 정신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흉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그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등교해 수업을 받았던 정신력이 뒷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쇠는 맞으면서 강해진다고 한다. '돼지 당나발' 사건은 대장장이의 망치질과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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