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환생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토대로 '사기'(史記)를 쓴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될까? 대구가 배출한 인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 세 거인(巨人) 배출하다
"조선 인재의 반(半)은 영남에서 나왔다"는 '택리지'(擇里志) 저자 이중환의 말처럼 경상도는 일찍부터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이 지역에서 장상(將相)'공경(公卿) 및 문장'덕행으로 이름난 선비, 공훈을 세우고 의(義)를 지킨 지사들이 많이 배출돼 '인재의 부고(府庫)'라 일컬어졌다.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라성 같은 인물을 배출한 것이다.
이 전통은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탁월한 인물들이 나와 이 나라 역사를 수놓았다. 대구를 두고 인재의 산실(産室)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재의 산실, 대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세 명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삼성 창업주, 김수환 추기경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그리고 정신 분야에서 태산북두와 같은 이 세 명은 대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이들 세 명은 대구에서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산업화를 이끌어 선진국 진입의 주춧돌을 놓은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와 인연이 각별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1950년 12월 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선 허억 대구시장이 "신랑 육영수, 신부 박정희"라고 호명하는 실수를 해 하객을 웃게 한 것은 이후 유명한 얘기가 됐다.
구미에서 태어난 박 대통령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청소년기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며 청운의 꿈을 꾸었다. 또 2군사령부 등 대구에서 군문에 재직하면서 혁명의 웅지(雄志)를 품었다. '대구 사람'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해 국회의원'정당 대표를 지내고, 대구시민의 전폭 지지로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대구의 인재 배출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반도체'스마트폰 등에서 세계 1위를 질주하는 삼성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그가 기업인으로 발돋움한 곳도 대구였다. 28세의 청년 이병철은 1938년에 청과물과 건어물, 국수 등을 파는 삼성상회를 대구에서 설립했다. 해방 후 서울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지만 6'25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대구로 돌아온 호암에게 대구는 다시 재기할 기회를 안겨줬다. 대구에서 매수한 조선양조 이익금 3억원(당시 1달러는 2원)으로 부산에서 삼성물산과 제일제당을 설립해 불과 2년 만에 거부 반열에 오른 것. 이후 호암은 1954년 대구에서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모기업이 되다시피 했고 삼성의 인재를 길러내는 '삼성사관학교'로 자리 잡았다. 호암은 대구가 낳은 사람이고, 삼성은 대구가 기른 기업인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한 김수환 추기경은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순교자 집안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 추기경은 다섯 살 때 천주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경북 군위로 이주했다. 김 추기경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유스티노신학교 부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다시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사제 서품을 받은 곳도 대구였다. 1951년 대구 계산동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사제가 돼 안동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의 첫발을 내디뎠다. 사제가 된 그날을 김 추기경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날따라 대구 계산동성당의 종소리는 유난히 성스럽게 울려 퍼졌다.(중략) 성가대와 선배 신부들이 불러 주는 성인열품도문(聖人列品禱文)의 성스러운 메아리가 성당을 맴돌 때,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와 자리하실 수 있도록 나는 내 마음을 비워 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세 거인 정신 깃든 대구
박정희 대통령, 이병철 삼성 창업주, 김수환 추기경 등 세 거인이 남긴 정신은 대구 곳곳에 깃들어 있다. 박 대통령의 모토는 '하면 된다' 정신. 이를 바탕으로 그가 조국 근대화를 이끄는 대장정에서 대구경북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국내외에 알리고, 새마을운동 등 그의 유지를 계승'발전하는 데에도 이 지역은 앞장서고 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삼성상회 터를 찾은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참다운 기업인은 거시적 안목으로 기업을 발전시키고 국부 형성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기업가 정신이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설파하고 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사목 표어를 지녔던 김 추기경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길을 제시했다. 나눔과 사랑을 몸소 실천했고 이 시대의 성자(聖者)로 기억될 수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매일 울려 퍼지는 계산성당 종소리처럼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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