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100만원 주면 가능…불륜 의심 차량 도청까지
차량 도난 방지나 영업용 차량 운행정보를 얻기 위해 사용하던 차량용 위치추적장치가 배우자 불륜 확인이나 차량 절도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위치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긴급상황을 제외하고 개인 또는 물건 소유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개인 또는 물건의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배우자 불륜 확인'차량 절도 악용=이달 9일 오후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버스정류소. 버스노선 안내판에 붙은 전단지에 자동차 위치 추적기에 대한 설명과 연락처가 쓰여 있었다. 전화를 걸어 "배우자의 불륜 관계가 의심돼 차량용 위치추적기 한 대를 사려고 한다"며 "배우자 몰래 차량에 설치하고 싶다"고 구매 방법을 물었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그냥 사서 붙이기만 하면 된다"며 "크기가 작아 들킬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통신업체를 통해 위치정보를 조회하는 방식으로 매달 일정 요금만 내면 된다"며 "위치추적 장치 판매 자체는 합법이기 때문에 어떤 용도로 쓰는지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 담벼락에도 비슷한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위치추적기를 사겠다고 하자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가입신청서와 위치추적기를 갖고 있었으며, 유선 제품을 구매하면 차량 운전자가 발견할 수 없도록 직접 매립해 주거나 카센터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기자가 "혹시 도청을 할 수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도청이 가능한 위치추적장치는 100만원 정도"라고 대답했다. 그는 "불륜 배우자를 추적하기 위해 위치추적기를 사겠다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치추적기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 달성경찰서는 지난해 11월 20일 자신의 차량에 장착돼 있던 위치추적 기능을 이용해 팔았던 차를 다시 훔친 혐의로 김모(34)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전북 전주 완산경찰서는 지난해 8월 전 애인의 차량에 위치추적장치를 설치한 뒤 미행하는 등 위치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전모(54'여) 씨와 이를 도운 아들 김모(24)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불법 사용 단속 어려워=위치추적장치가 불법 행위에 악용되고 있지만 판매 자체는 합법적이라는 점 때문에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어렵다.
도청이나 동의 없는 위치정보 수집은 불법이지만 위치추적장치, 스파이캠(초소형 카메라), 녹음기 등의 판매 자체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차량용 위치추적장치'를 검색하자 수천 개의 업체에서 위치추적장치를 판매하고 있었다. 대구에서도 판매처로 확인된 곳만 10곳이 넘었다. 이들은 대부분 심부름센터 형태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거래되는 위치추적장치의 종류도 많았다. 유선 제품은 10만~20만원이며, 무선 제품은 40만~60만원에 살 수 있었다. 위치추적기를 차량에 부착한 뒤 통신사에 위치정보를 수신할 서비스 이용료를 매달 1만~1만5천원을 지불하면 위치추적을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난다.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해 놓은 차량의 이동경로 등 운행정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실행하거나 인터넷에서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업체들은 저마다 영업용 차량, 화물'택배 차량의 운행 정보 기록에 쓰인다며 광고를 하고 있었지만 '불륜확인용' '심부름센터용' 등의 내용을 포함한 광고도 눈에 띄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 차량 도난 시 추적용으로 위치추적장치의 판매가 늘었지만 흥신소, 심부름센터를 비롯해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구매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다른 판매업자도 "배우자 등 타인의 차량에 몰래 부착하는 위치추적장치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나 일주일에 100개 넘게 팔린다"고 말했다.
누리꾼이 자주 이용하는 게시판에서도 '위치추적을 당하는 것 같아요' '불륜이 의심되는 배우자 차량에 위치추적장치를 달려고 하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위치추적장치 탐지기를 사려고 합니다' 등 본인이 설치하지 않은 위치추적기에 대한 문의가 수백 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사용 용도를 알 수 없는 데다 모든 차량에 탐지기를 들이댈 수도 없어서 이들 기기의 불법 사용을 단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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