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보안철통위?

입력 2013-01-15 07:04:14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둥지를 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앞은 요즘 인수위원과 기자들 사이에 '숨바꼭질' 해프닝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출근 시간대엔 사무실 입구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고, 인수위원들은 이들을 피해 사무실로 뛰어들어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한번은 한 여성 인수위원이 '벌떼'처럼 몰려오는 기자들을 피하느라 '신데렐라'가 됐다. 출근길에 기자들을 피해 사무실로 뛰어가다가 구두 한 짝이 벗겨진 것이다.

다른 인수위원은 당선인 주재 오찬을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기자들이 따라붙자 급하게 자신의 차량에 올라타 주차 브레이크도 안 풀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보다 못한 한 기자가 창문에 노크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풀었다"고 알려준 뒤에야 차를 몰고 황급히 떠났다.

평소 기자와 친분이 있던 새누리당 당직자들이 인수위에 합류한 뒤엔 전화가 '불통'이 됐다. '섭섭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 인수위가 끝날 때까지 이해해달라'는 답장이 왔다.

이런 인수위를 두고 기자들은 '보안철통위'라고 부른다. 박 당선인이 '업무 보안'을 강조하고, 김용준 인수위원장도 '함구령'을 내린 탓이다. 지난해 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당선인은 비대위 명단이 언론에 사전 유출되자 "어떤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런 박 당선인의 스타일을 아는 인수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보안'은 생명이고, '기자'는 피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대선 직후 이맘때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발 뉴스가 쏟아질 때다. 5년 전에도 그랬다. 모든 신문의 머리기사는 인수위발 뉴스로 채워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인수위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온다. "기사 하나에 '알려졌다', '전해졌다'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데스크에 매일 욕을 먹는다"고 하소연하는 기자들은 "그래도 (다른 신문사에) 물은 먹지 않는다"며 애써 위안을 삼는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보안철통위'의 '불통' 수준이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인수위원들의 인터뷰 금지령이 내려지더니 급기야 11일부터 시작된 정부 부처의 인수위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민께 정책적 혼선과 혼란을 드리게 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의 실행력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한마디로 '주는 것만 받아 쓰라'는 식이다. 일부에선 새 정부의 언론관이 3공, 5공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는 핀잔도 나온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었다. 세종 13년 3월 5일 자 실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언로(言路)를 틔웠더니 참소가 많을까 걱정'이라는 한 신하의 말에 세종이 말했다. "말이 혹시 사리에 맞지 않더라도 벌을 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속에 품은 바를 숨김 없이 말하므로 간혹 진위(眞僞)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나 내게 유익한 것이 많다." 말을 못하게 입을 틀어막으면 숨이 막히는 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세종의 생각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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