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정책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④

입력 2013-01-15 07:20:35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 중에서)

길에 대한 생각을 오래, 그리고 많이 했다. 원래 길이란 없다.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 길을 몰라 헤매고 내가 걷는 걸음이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가에 고민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걷는 모든 걸음에 대해 담담하다. 내가 걸어가면 그건 이미 길이다. 흔들릴 필요도, 주저할 필요도, 낙담할 필요도 없다. 서둘러야 할 때도 있지만 조금씩 느림의 미학도 깨닫고 있다.

삶의 길에는 바로 그 삶에 지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 작은 정책들이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보잘것없는 마음의 크기와 걸음의 길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 자본에 굴복해서야 말이 되는가? 욕망의 기차를 타고나면 그때부터는 이미 마음의 길을 잃어버린다. 비록 지금 욕망의 기차에서 내리기가 어렵지라도 천천히 나만의 길을 찾아 걷어가는 사람의 등을 토닥이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나는 독서정책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교육정책은 그것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정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학부모들의 욕망과 맥락이 닿아 있기 때문일 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독서정책만이라도 그러한 경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고 아이들의 마음과 만났으면 한다. 알고 보면 그것이 독서정책의 본질이다.

독서정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고 그 상처를 치유하여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길이다. 경쟁이 중심이 된 대회보다는 어울마당이나 축제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디베이트 어울마당이나 책 축제와 같은 대규모 독서행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의 껍데기보다는 속살을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다.

대구시 교육청의 올해 독서정책은 크게 세 갈래의 방향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수십 가지로 나누어졌던 사업들을 통합하여 운영함으로써 기본적으로 학교현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는 아침행복독서운동, 한도시한책읽기운동, 독서치료운동, 직원책읽기운동, 북스타트운동 등을 통해 '책으로 하나 되는 행복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꿈을 찾아가는 책쓰기'이다. 책쓰기 연수를 비롯하여 나만의 책 스토리텔링 축제, 책출판기념회, 책쓰기동아리 운영, 책 축제, 교사책쓰기연구회 지원 등의 정책을 통해 학생들은 물론 교사, 학부모까지 자신만의 책을 쓰면서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를 만들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려와 나눔, 소통을 위한 토론'으로 토론연수와 함께 토론 어울마당, 토크 콘서트, 지역토론리그, 학교 및 지역 토론캠프 등을 통해 소통이 가능한 미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다지게 할 것이다.

자주 바람이 분다. 가만히 그곳에 머물고 싶어도 자주 바람이 불어온다. 내 마음처럼 정책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게다. 삶이란 것이 내가 기획하고 걸어가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삶의 길인 것을. 내가 걷는 길은 여전히 무표정한 아스팔트로 덮였고, 거리는 껍데기만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흔들린다. 길들이 길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풍경 때문에 나도 자주 흔들린다. 그래. 가끔은 한 발만 디뎌도 된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길은 존재하므로. 여기와 저기 사이에 길은 존재하므로. 내가 걸으면 그곳이 바로 길이 되므로.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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