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근육도 바이러스 감염되면 혈액 펌프기능 고장
어느 날 아침 주부 고명주(38'가명) 씨는 119구급차량에 실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응급실에 도착했다. 5살 난 아들이 한 달 정도 감기를 앓고 있었고, 고 씨도 일주일 전부터 감기 증상을 느꼈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은 없었다. 그러다가 전날 갑자기 가만히 누워 있어도 숨이 찬 증상이 생겨서 동네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사 먹었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호흡곤란이 심해져 119구급대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졌고, 구급차량 안에서 심장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여러 응급조치를 했지만, 심장은 되살아나지 못했고, 심혈관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고 씨는 숨졌다. 원인은 급성 심근염으로 밝혀졌다.
◆별다른 증상 없는 급성 심근염
급성 심근염은 심장 근육에 갑자기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심장 근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피를 충분히 뿜어내지 못하고, 급기야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흔히 감염성, 독성, 면역성 등 세 가지로 나뉘며, 특히 바이러스성에 의한 감염성 심근염이 가장 흔하다. 감기가 위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진행 속도가 빠른 심근염을 '급성 전격성 심근염'이라고 한다. 대부분 환자가 운동 능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감기 후에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게 된다.
아울러 가슴 통증과 부정맥(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늦어지거나 불규칙해지는 것)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슴 통증은 전체 급성 심근염 환자 중 약 35%에서 발생한다.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때로는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온다.
심한 경우 심부전(심장의 기능 이상 때문에 온몸의 장기나 조직 대사에 필요한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이 오거나 돌연사할 수도 있다.
특히 급속히 진행하는 전격성 심근염의 경우,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심부전이나 심각한 부정맥, 심장성 쇼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심장성 쇼크는 심장이 심하게 손상돼 충분한 혈액을 뿜어내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 쇼크가 발생하면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해도 사망률이 매우 높다. 이런 경우 보호자는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놀라게 된다.
심근염을 앓고도 생존한 환자의 80% 정도는 6개월 뒤에 심장 기능이 완전히 복구되면서 완치된다. 하지만, 일부 환자의 경우, 관상동맥의 연축(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수축하면서 혈액순환이 안 되는 것) 때문에 심장 기능의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체외순환장치로 혈액 순환 도와야
고비를 넘기고 생존한 환자 대부분은 일상에서 별다른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따라서 전격성 심근염은 쇼크가 발생한 기간을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심근염의 치료는 심근염을 발생시킨 원인을 치료하는 '특이적 치료'와 동반 증상인 심부전이나 부정맥을 치료하는 '비특이적 치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심근염 원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항바이러스제제와 면역억제제, 면역글로불린을 주사한다.
그러나 급성 전격성 심근염은 심장성 쇼크가 와서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강심제와 대동맥 내 풍선 펌프로 혈액순환을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순환이 안 되면 환자는 몇 시간 만에 숨진다.
대동맥 풍선 펌프는 특수 풍선을 대퇴동맥(사타구니에 있는 동맥)을 통해 심장 대동맥 안으로 집어넣은 뒤 심장박동에 따라 확장과 수축을 반복해 혈압을 유지해 주는 장치다.
이때 경피적 체외순환장치(심장수술을 할 때 사용하는 인공심폐기에서 발전한 것으로 다리 동맥이나 정맥, 목정맥으로 관을 삽입해 혈액을 순환시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장치)를 사용하면 혈액 순환이 제대로 안 되는 증상과 이로 인한 장기 손상을 막아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감기 앓은 뒤 호흡곤란 조심
양순분(52'가명) 씨는 일주일 전부터 감기를 앓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빠서 병원을 찾았다.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 증세가 보여서 심혈관 조영술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급성 심근염으로 생각하고 중환자실로 옮겨 면역글로불린과 광범위 항생제, 항바이러스제제를 사용해 치료했다.
하지만, 입원한 날 계속 혈압과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심장성 쇼크 증상이 발생해 강심제를 사용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적극적인 치료를 했지만, 혈압과 산소농도가 계속 떨어지는 심부전이 지속해 경피적 체외순환을 했다. 이후 부정맥이 발생하다가 체외순환 실시 12시간 정도 지나자 심장이 거의 뛰지 않는 상태가 돼 체외순환장치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2일째부터 심장이 약하게 뛰기 시작하다가, 4일째부터 정상 박동이 유지됐고, 이후 심장기능이 돌아온 후 9일째 체외순환장치를 뗄 수 있었다. 사흘 뒤 인공호흡기를 뗐고, 별다른 이상 없이 퇴원해 잘 지내고 있다. 만약 적절한 시기에 경피적 체외순환으로 혈액순환을 유지하지 못했다면 숨졌을 것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김재범 교수는 "만약 감기를 앓은 후 이전에 없던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한다면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볼 필요가 있다"며 "심장염을 앓았던 환자는 첫 일 년간 매달 한 차례씩 추적 관찰하면서 신체 활동을 서서히 증가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확장성 심근병증(심장근육에 생기는 병증 중에서 심장이 커지면서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서서히 진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6개월에 한 번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심장 크기와 기능을 관찰해야 한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김재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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