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의 재발견] <1부>새로운 출발 ②은퇴 축하금 마련하라

입력 2013-01-05 07:27:18

"가족 위해 고생했다" 늙은 자신에게 주는 종잣돈

그림: 화가 이도현
그림: 화가 이도현

"은퇴 축하금. 생소한데 그게 뭡니까?"

-은퇴를 자축하기 위해 준비하는 별도의 돈이지요.

"은퇴가 뭔 축하할 일이라고 미리 돈까지 모아가며 축하합니까."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은퇴가 되는 직장인의 삶을 아십니까. 수십 년 동안의 노고를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모른척하고 그냥 넘긴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은퇴 축하금은 말 그대로 은퇴를 자축하기 위해 마련하는 돈이다. 직장생활을 끝낸 자신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완주를 격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다. 가정을 위해 자존심을 뭉개고, 스스로에게 인색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에 대한 보상이며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힐링비용인 셈이다.

은퇴자들은 축하금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거나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깊이, 멀리, 길게 은퇴의 시간을 호흡할 여유를 갖는다. 일종의 은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제 역할이다. 또 축하금은 인생의 전반전을 정리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막과 막 사이의 '인터미션'(intermission)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은퇴에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외국에서는 은퇴 축하금을 준비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활용해 축하금을 마련하면서 보다 즐거운 은퇴, 설레는 은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은퇴를 1년 앞둔 회사원 최태욱(54) 씨는 "직장생활 25년 동안 윗사람 눈치 보고 가족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며 살았지만 은퇴 후에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위해 쓸 돈도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퇴자는 자신을 위해 지출할 여력이 없다.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으로 자식공부 시키랴, 결혼 준비도 벅차기 때문이다. 20여 년 악착같이 직장생활을 했던 세월이 서글퍼지기까지 하다는 이들은 내 가정을 마지막까지 지켜줄 퇴직금을 어떻게 뚝 떼서 나를 위해 쓸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은퇴 4년차인 김모 씨는 "막상 퇴직하니 나를 위해 쓰는 돈에는 손이 오그라든다"며 "통장에 내가 쓸 수 있는 돈 1천만원이 있다면 세계 오지여행을 하며 정말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은퇴 축하금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손 벌릴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노후의 조그만 행복'을 가져다주는 비자금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5년 전 교직에서 은퇴한 공문대(65) 씨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조금씩 저축해 1천5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마련했다"며 "이 돈으로 손자손녀를 위해서 또 나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니 그런대로 가장의 체면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은퇴 후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미리 준비하라고 권한다. 아주 든든하단다.

# 조급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 날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한 달 두 달이 아니고 수십 년 이런 생활이 지속한다고 생각하면 그 공포는 충격에 가깝다. 자연히 마음이 조급하다. 은퇴 후 1~2년 안에 성급하게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은퇴자들은 일을 저지르게 된다. 철저한 준비 없이 쫓기듯 시작하는 창업은 거의 백전백패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583만 개인사업자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내 휴업하거나 폐업하는 비율이 47%에 달했다.

은퇴 축하금은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초조감을 덜어주고, 은퇴 후 몇 년간 여유를 갖고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보장해 준다. 나의 꿈과 나의 행복을 생각해보면서 구체적인 노후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향키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장성수 중앙이아이피 중앙에셋 은퇴경제연구소 전문위원은 "은퇴 축하금 마련에 앞서 해야 할 일은 노후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목표액을 잡으려면 은퇴 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며 노후 30년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가 전제조건이다"고 했다

67세의 정모 씨는 평소 꿈이 대학 입학이었다. 퇴직 후 꿈을 이루기 위해 2천만원의 비용을 마련하기로 하고 저금을 시작했다. 통장에서 500만원을 꺼내고, 5년 계획으로 생활비 10만원씩을 줄이며 공공근로로 매달 번 돈 20만원을 모아 2천만원을 마련했다. 뒤늦은 은퇴 축하금이었다. 정 씨는 젊은 시절에 이 자금을 준비했더라면 좀 더 쉽게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 축하금은 행복한 노후로 진입하는 첫 번째 문을 활짝 열어주는 신선한 바람과 같다. 인생의 1막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2막을 알차게 누리고 싶다면 축하금 준비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노후설계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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