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날면 하늘까지 오를 대구, 한 번 울면 세상도 놀랐다
인물을 평가하는 데 특정한 시기 또는 한 단면만을 갖고 재단하면 오류를 저지르거나 진실을 왜곡하기 쉽다. 그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 고찰하고,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두루 살펴야만 인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이는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理致)이다.
대구를 수식하는 여러 말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두 가지가 있다.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도시인 '고담(gotham) 시티'에서 유래한 '고담 대구'와 대구의 보수성을 걸고넘어진 '수구꼴통 도시'라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것들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대구의 한 단면 또는 특정 시기에만 집착한 것에 불과한, 매우 그릇된 표현일 뿐이다.
▲'고담 시티' '보수꼴통 도시' 아니다
대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길게 보면 2만 년쯤 전부터다. 대구현이 군으로 승격한 것은 1419년,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된 것은 1601년이었다. 2만 년에 이르는 대구의 역사를 모두 살펴 대구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경상감영이 들어선 이후 4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자세히 고찰한 후 대구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해야만 대구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를 포함해 경상도 사람들은 작은 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싫다, 좋다는 것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삭일 뿐이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 인정이 넘치고 의리를 앞세우는 우직한 성품을 갖고 있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마 됐다"며 뒤로 물러앉는 게 대구 사람이다.
하지만 결단해야 할 때엔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한 것이 바로 대구 사람이다. 중국 초나라 장왕(莊王)의 '불비불명'(不飛不鳴) 고사에 나오는 새와 같다고나 할까. 초 장왕은 즉위 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파묻혀 지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충신이 왕에게 물었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새입니까?" 이에 장왕은 "이 새는 날지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오를 것이고, 울지 않았지만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라고 했다. 방탕한 척하며 신하들을 눈여겨보아 두었던 장왕은 부정한 관리들을 척결하고 충신들을 불러들여 정사를 바로잡았다. 그렇게 부국강병을 이룬 장왕은 춘추시대 세 번째 패자(覇者)에 올랐다. 새와 장왕처럼 대구는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올랐고, 한 번 울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역사의 주역(主役), 대구
경상감영 설치 후 지난 400여 년 동안 대구는 이 나라 역사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끊임없이 역사 변화를 선도했다. 시대정신(Zeitgeist'時代精神)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기에 '리딩(Leading) 코리아, 대구'라는 명제가 자연스럽게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구는 말 그대로 '중심'이었다. 굵직굵직한 사건 가운데 대구가 주역이 된 사건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 1960년의 2'28운동, 1960'70년대 근대화'산업화의 중추적 역할, 2002년의 지방분권운동 태동이 바로 그것이다. 대구에서 제일 먼저 횃불이 타오른 국채보상운동.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계층을 망라하고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한 운동으로, 세계사적으로도 조명받아 마땅한 민간 주도의 운동이다. 대구의 학생들이 독재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2'28운동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민주운동의 효시(嚆矢)였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기초를 놓은 근대화'산업화 역시 대구가 견인차가 됐다. 10여 년 전 대구에서 태동이 된 지방분권운동은 지방과 수도권이 더불어 사는 길을 제시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이들 네 가지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모두가 대구에서 발원'태동했거나 중심이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록 처음엔 미약한 듯했으나 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됐다는 사실이다. 국채보상운동은 항일운동, 2'28운동은 민주화, 근대화'산업화는 '선진국 대한민국'의 기틀이 됐으며 지방분권운동은 지방이 살아갈 길을 제시했다. 또한 관(官)을 비롯한 누가 시킨 것이 아닌 자발적(自發的)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 김극년 전 대구은행장은 "삼국시대부터 달구벌은 의리 있는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며 "의(義)를 추구하는 정신이 국채보상운동과 2'28운동 등을 낳은 밑거름이 됐다"고 진단했다.
▲'리딩 코리아'의 힘, 어디에서 오나
수도(首都)가 아닌 지방도시 대구가 대한민국 역사를 이끈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홍종흠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그 뿌리를 신라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없었다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민족국가를 생각할 수 없어요. 그 신라의 영역이 바로 경상도이고 그 중심에 대구가 있습니다. 이 나라를 보위하고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인식을 대구 사람들은 1천 년 이상 면면하게 이어오고 있지요. 이것이 대구가 이 나라를 선도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홍 전 관장은 "시대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는 세력을 키웠을 때엔 우리나라를 이끌었고 정쟁에서 밀렸을 때는 움츠려서 내부에서 실력을 쌓아갔다"며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서 이 지역 사람들은 항상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행동했다"고 강조했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대구 출신의 인물들이 그 시대마다 그 나름대로 나라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의 기능을 했던 것은 기록상으로도 남아 있고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라시대 리더들은 '얼리 어답터'라는 성격이 강했어요. 내적으로 지식을 쌓으면서 당나라와 교류하면서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빨리 수용하고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이뤄졌습니다. 고려시대 들어와서도 중국으로부터 유학을 받아들여 우리식으로 만들어 조선의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이 땅 사람들이지요." 오 연구위원은 "대한민국이 건설된 뒤에 산업화를 주도한 것도 대구 정신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며 "이 땅 사람들은 시대변화를 앞장서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대구가 리딩 코리아의 도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구사랑 대구자랑 자문위원과 전문가들은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도 없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며 "대구 시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이 나라를 리드하고 발전시키는 주인공 역할을 계속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한민국을 이끄는 '리딩 코리아' 역할을 대구가 계속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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