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한다고 생각 말라…내 일상이 그들에겐 항상 색다른 여행"
돈도 받지 않고, 모르는 사람을 제 집에 들이는 이들이 대구에도 많다. '볼 것 없는 도시'라는 오명을 쓴 대구에서 이들은 낯선 여행자와 무엇을 하는 걸까. 대구에서 활동하는 카우치서퍼들을 만나 각자의 '카우치서핑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내 일상이 여행자에겐 여행"
줄리안 오트(33'미국) 씨는 카우치서핑 '예찬론자'다. 그의 프로필에 여행자들이 남긴 평가만 55개. 그는 "여태까지 호스트한 사람을 다 세지 않아서 전부 몇 명인지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앞산이 마주 보이는 대구 남구 대명동의 단독 주택 2층이 그의 집이다. 방만 총 3개, 여기에 거실까지 더 하면 한 번에 10명이 자고도 남는다. 오트 씨는 "대구에서 열 번 이상 이사를 한 끝에 2월 진짜 한국집 같은 이 집에 왔다. 건물에 옥상이 있어서 여럿이 파티하기도 좋다"고 말했다.
그가 카우치서핑을 알게 된 것은 2005년 서울에서 만난 영국인 덕분이다. 2004년 처음 문을 연 카우치서핑 사이트가 생소했을 무렵, 그 영국인과의 만남은 오트 씨의 삶을 바꿔버렸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것이 좋다"는 오트 씨는 2007년 이 사이트가 재정적인 문제로 폐쇄된다고 했을 때 기꺼이 기부금을 낼 만큼 열정적인 회원이다.
그는 대구 사람보다 대구를 더 잘 안다. 여행자가 예술을 좋아하면 대구미술관으로, 음악을 좋아한다면 동성로에 적을 둔 밴드 공연으로 이끈다. 여행 책자가 아닌 그의 일상에서 나온 여행지다. "예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대구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팔공산에는 조용한 찻집이 많더라고요. 아, 대구미술관 옆에 청계사라고 알아요?"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작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이지만 정말 아름답다"며 눈을 찡긋했다. 계명대 사진학과 3학년인 그는 서퍼가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학교 수업에 초대한다. 현지인의 평범한 일상이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오트 씨는 "한번은 일본에 살고 있던 미국인이 우리 집에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한국 여행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나중에 원어민 교사로 대구에 다시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서울에 왔으나 2006년 대구에 둥지를 틀었고 지금까지 이 도시를 떠나지 않는 '뚝심' 있는 남자다. 대구는 7년간 정을 쌓은 친구가 있는 새로운 고향이기 때문. "나처럼 대구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재밌는 도시예요. 지금도 스스로 대구를 찾는 여행자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예의 바른 여행자가 되세요"
2012년 6월, 5명이 사는 대구 중구의 한 가정집에 20대 캐나다 커플이 찾아왔다. 아니, 서소현(23'여'대구대 심리학과) 씨가 이 커플을 초대했다. 태국과 일본, 한국을 거치는 다소 특이한 여행 계획을 가진 이 커플을 집으로 초대한 이유는 이들의 고향 때문이다. "고향이 캐나다 에드먼턴(Edmonton)이라고요? 제가 2010년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간 지냈던 곳이 그 도시였거든요!" 줄곧 한국에 사는 '외국인 영어강사'들의 초대를 받아 머물렀던 이들도 "한국 가정집에 가고 싶다"며 곧장 초대에 응했다.
외국인 여행자와 4박 5일이 낯설 만한데도 소현 씨 부모님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의 어머니는 "내 딸도 배낭여행을 하면 남의 집에서 공짜로 지내는데 우리도 똑같이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환영했고, 갈비와 산채비빔밥 등 부지런히 전통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더 적극적으로 여행자 가이드에 나섰다. "나중에는 엄마가 직접 운전해서 이 친구들이랑 합천 해인사까지 같이 가셨다니까요. 같이 사진도 찍고. 나중에 저보다 엄마랑 더 친해졌어요. 하하."
이방인이 느끼는 한국의 모습을 듣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왜 한국에 왔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정말 재밌었어요. 이 친구들이 대학에서 IT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한국이 IT 신흥 강국으로 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왔대요. 여기저기 공짜로 펑펑 터지는 와이파이(wifi)에 감동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카우치서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캐나다 커플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이불을 깔끔하게 개 소현 씨를 감동시켰다. 그는 "나중에 물어보니 일본에서 다다미 이불을 개는 법을 배웠다고 하더라. 이런 사소한 것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고 말했다. 여름 두 달간 유럽 여행을 하며 줄곧 카우치서핑을 했던 소현 씨도 호스트를 만날 때마다 소주나 전통 젓가락을 선물하며 성의를 표현했다. "카우치서핑이 공짜 숙박서비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여행객이나 손님으로 지켜야 할 예의를 잘 지키면 여행이 더 즐거워질 겁니다."
◆ "새로운 오빠가 생겼죠"
김은지(22'여'계명대 텍스타일디자인과) 씨는 2012년 9월 싱가포르에서 온 다르시(23)와 2박 3일을 함께 지냈다. 부모님과 은지 씨, 세 식구가 사는 집에 모르는 남자가 온다니. 하지만 하루 만에 처음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남동생밖에 없는 은지 씨에게 다르시는 '좋은 오빠'였다. "아빠가 안 계실 때 집에 있는 의자도 조립해주고, 내 영어 에세이도 다르시가 다 고쳐줬어요. 집에서 오빠들이 하는 일을 다 해줬죠."
손님을 '가족'처럼 생각하니 관광지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사라졌다. 아침마다 은지 씨 어머니가 준비한 '집밥'을 먹었고, 시간이 나면 옆 동네 이모집에 놀러가 차를 마셨다. 당시 친지가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다르시도 그곳에 함께 갔다. "그때 사촌 언니가 결혼을 해서 친척들이 밤늦게까지 모여 있었거든요. 오후 11시에 엄마가 '같이 가자'고 권하니까 오히려 좋아하더라고요. 그날 잔치 쇠고깃국 제대로 맛봤을 거예요."
카우치서핑의 재미는 다른 문화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찾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수시로 거울을 보는 여자들의 모습이 다르시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그는 "지하철에서 여자들이 계속 손거울을 보더라. 싱가포르와 정말 다르다"며 신기해했다. 또 노트북 케이스를 만드는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다르시와 디자인을 전공하는 은지 씨 둘다 '무늬'에 관심이 많았다. 은지 씨는 "다르시가 나한테 카우치 요청을 한 이유도 내 전공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10일간 서핑을 했었던 은지 씨는 직접 만나기 전 사람을 100% 믿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카우치서핑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성추행과 성폭행 등 범죄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 "남성 호스트에게 초대를 받거나 집에 초대해야 한다면 그 사람의 프로필과 다른 사람이 평가한 추천(reference)을 꼼꼼히 읽어보세요. 또 페이스북 친구를 맺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기획취재팀=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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