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만큼 대구의 지하공간도 북적인다. 반월당역 등 도시철도역을 매개로 한 지하공간들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철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면서 상가 일색이던 공간에 문화도 속속 깃들고 있다. 대구 도시철도는 1997년 11월 1호선 개통, 2005년 10월 2호선 개통에 이어 지난 9월에는 2호선 경산 연장 구간에 3개 역이 추가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도시철도역을 매개로 한 지하공간은 시민들의 일상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대구 도시철도역 지하공간 탐방기
대구의 대표적인 도시철도역은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인 반월당역이다. 가장 서쪽 약령시'현대백화점과 연결된 출구부터 가장 동쪽 경북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와 연결된 출구까지. 0.5㎞가량 길게 늘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공간을 갖고 있다. 출구 수도 모두 23개로 전국 최다이다. 규모가 큰 까닭에 메트로센터와 메트로프라자 등 두 곳 상가가 들어서 있다.
취재진은 매일신문사 건물과 인접한 반월당역 지하공간 가장 서쪽 18번 출구로 들어가 가장 동쪽 9번 출구까지 걸으며 반월당역 지하공간의 특징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많은 시민들에게 익숙한 공간이지만 새롭게 조명할 요소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달 18일 오전 10시 30분쯤.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18번 출구로 들어섰다. 훈훈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벌써 오가는 이용객 30여 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칼바람에 행인이 적은 바깥과 대조적이었다. 동쪽으로 향했다. 조금 걸으니 곧장 동아쇼핑점 입구가 나왔다. 사실 반월당역 지하공간은 현대백화점'동아쇼핑'대구백화점 본점 등 백화점 3곳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통로이기도 하다.
1'2호선 도시철도 탑승구로 가는 입구를 지나자 넓은 중앙광장이 나타났다. 이곳 일대는 '지하의 동성로'라 할만하다. 한 예로 동성로의 중심인 대구백화점 앞 광장 주변으로 요즘 뜨는 코스메틱 브랜드숍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동성로점이 아닌 반월당점 명칭이 붙은 내로라하는 코스메틱 브랜드숍 10곳이 모여 있다. '무조건 5천원' 팻말이 붙은 보세 및 브랜드 의류점이 뒤섞인 모습도 동성로와 닮은꼴이다. 대구관광정보를 알리는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 정보전달 장치)도 설치돼 있다. 동성로에 있는 관광안내소의 무인 분점이 아닌가 싶었다.
동쪽으로 좀 더 걷다보면 3m 정도 걸어 오르는 계단이 나오는데 여기까지가 메트로센터이고 건너서는 메트로프라자 구간이다. 다른 도시철도역 지하공간이라면 금방 끝이 났을 발걸음이지만 아직 절반밖에 못 왔다. 의류나 뷰티 제품 위주 상가였던 메트로센터와 달리 이곳은 아케이드게임 전문점, 피규어(모형) 전문점, 기타 강습소 등 푸근한 동네 상가 느낌의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저렴한 먹거리촌이 형성돼 있는 것.
◆먹거리촌, 포토거리…특색 거리도 지하에
메트로프라자 가장 동쪽 끝, 반월당역 9번 출구 쪽으로 가면 식당 13곳이 둥글게 모여 있는 먹거리촌이 있다. 걷다 보니 마침 점심때인 정오쯤이 됐다. 할아버지, 중'장년층, 젊은 직장인 등 다양한 세대가 이곳 식당 모두 합쳐 안팎으로 놓아 둔 30여 곳 테이블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메뉴를 살펴봤다. 공깃밥이 공짜인 수제비나 칼국수가 2천500원, 국내산 미꾸라지를 사용한 추어탕이 4천원, 선지국밥이 2천500원, 우거지 소고기국이 2천500원이었다. 이외에도 2천원대 메뉴가 많았고, 비싸도 3천~4천원을 넘기지 않았다. 직장 동료와 함께 둘이서 왔다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 금모(33) 씨는 "직장이 근처에 있어 일주일에 3일 정도 온다. 저렴한 가격이 마음에 든다. 메뉴도 많고, 맛도 괜찮다. 칠성시장이나 서문시장 등 조금 멀리 가야 느낄 수 있는 '복작복작 거리는' 전통시장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한편, 요즘 번화가나 상가를 평가하는 지표가 커피전문점 수다. 유동인구 등을 가늠하는 잣대다. 반월당역 지하상가에는 모두 15곳의 커피전문점이 있다. 동성로나 대학가와 비교해도 적잖은 수준이다.
반월당역 지하상가 먹거리촌과 같은 특색 있는 지하 속 거리가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지하상가(대현프리몰)에도 있다. 명칭은 '디지털 포토 프리몰'. 중앙로역 중앙광장에서 서문시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사진관 20여 곳이 줄지어 들어선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가족사진 위주인 다른 사진관과 달리 이곳 상점 유리창 안에 전시된 사진들은 대부분 친구나 커플 등 젊은이들 사진이다. 사랑과 우정의 증표로 발랄한 콘셉트의 사진을 찍으러 오는 10대와 20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문화공간으로, 대학가 젊은이들 숨통도 트이고
쇼핑하고, 사 먹고, 사진 찍고…. 도시철도역 지하상가는 시민들의 소비로만 움직일까? 아니다. 지상에서만 움트던 문화의 싹을 뿌리고 있는 지하공간이 있다. 도시철도 2호선 범어역의 범어아트스트리트가 대표적이다.
대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범어아트스트리트는 '예술가와 시민이 소통하는 커뮤니티'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스튜디오' 공간 10곳에서는 지역 작가들의 작품 발표는 물론 시민들이 예술교육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페이스' 공간 5곳은 도심형 갤러리를 표방하며 주로 실험적인 예술작품을 전시한다. 이외에도 문화예술교육체험실과 문화예술정보센터를 상시 운영하며 대구시민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해 나갈 예정이다. '미니 콘서트 범어'도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퇴근길 콘서트)과 토요일 오후 2시(가족소풍 콘서트)에 클래식, 재즈, 전통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 범어역 지하공간은 '범어지하상가'라는 이름으로 2010년 2월 완공 이후 상가 입주자를 찾지 못해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지금도 자리할 예술을 아직 찾지 못한 빈 공간이 더러 보이지만 이곳이 앞으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되고 있다.
19일 오후 경산에 있는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역을 찾았다. 지난 9월 문을 연 영남대역은 도시철도 1호선의 교대역'신천(경북대)역과 2호선의 계명대역에 이어 4번째로 대학명이 들어간 도시철도역이다. 그런데 영남대역은 유독 영남대 스타일이 강했다. 일단 5곳 출구 중 3곳이 영남대와 거의 직통으로 연결된다. 출구 3곳 설명에 각각 영남대 정문'영남대 국제교류센터'영남대 천마아트센터라고 적혀있었다. 출구 계단 위로는 영남대 홍보 플래카드가 잔뜩 걸려 있었다.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사답게 특별히 설치한 대형낙서판 2곳에는 이미 낙서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에 설치된 가로 7.3m, 세로 2.7m 크기의 대형 도자벽화 '계곡'도 김호득 영남대 교수의 작품이다.
역사의 남자화장실을 방문했더니 거울을 쳐다보며 꽃단장을 하는 남자 대학생이 여럿 있었다. 대학생 장모(21'영천시) 씨는 "기말고사가 끝나 동성로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이전에는 택시비가 비싸 꿈도 못 꾸던 일이지만 반월당역에서 오후 11시 33분까지 막차가 있는 도시철도를 타면 여유있게 학교로 되돌아올 수 있단다. 그만큼 대구와 경산에 주로 분포돼 있는 지역 대학가 젊은이들의 교류가 이제는 조금 수월해졌을 지 모를 일이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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