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7일 오후 5시 18분쯤 일본 동북부 도호쿠(東北) 지방에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300㎞ 넘게 떨어진 도쿄 도심 빌딩에서도 1분 이상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지진이었다. 일본 기상청은 즉시 미야기현에 쓰나미 경보를 내렸다. 아오모리현 등 미야기현 주변 지역에도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했다. 지진 발생 즉시 모든 국민의 휴대전화로 "오후 5시40분쯤 1m 높이의 쓰나미가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니 당장 대피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다. 국영방송인 일본 NHK도 긴급방송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을 상기해달라"며 즉각 대피를 요구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아 터진 지진이었다. 불안해할 법도 했던 일본은 침착했다. 그들이 살아온 땅, 살아가야 할 땅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일 만했다. 그러나 시종일관 피해 최소화에 매진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그들이 대처해왔던 방식 그대로였다. 자연재해 예상 폭을 늘려잡는 식이었다. 강진도 대비만 잘하면 피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었다. 몸으로 느끼는 지진(진도 1 이상)만 일본 전역에서 하루 100번 이상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강진은 아니라는 게 근거였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은 인간의 기술과 지혜로 최소화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예측 또 예측
"동일본 대지진은 우리도 처음 겪었던 일이다. '예상외'라는 말밖엔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바뀌었다."
과연 온고지신이었다. 일본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강도가 컸던 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태까지. 재해 대비 시나리오를 통째로 바꾼 것들이었다.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결과 자연재해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측 가능성을 대폭 늘렸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다른 누구도 막을 방도는 없다고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다.
일본의 재난에 대한 개념 정리는 '예측'과 '대비'로 압축할 수 있다. 방재 정책의 실권자인 아오야기 이치로 일본 내각부 방재담당 참사관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진이나 원전 사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의 우려는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런 개념 정리는 방재 관계기관 곳곳에서 실제 이뤄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기상청 전국예보센터 지진화산현업실이었다. 이곳 니시와키 마코토 조사관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화산을 관측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내 200개 관측소에서 보내오는 국내 정보는 물론이었다.
일본이 가장 신경을 써 대비하고 있는 대형 지진은 서일본 대지진. 앞으로 30년 이내에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못박아놓은 이 재난에 일본은 정밀한 예측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진이 예상되는 나고야 일대는 24시간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고 했다. 시즈오카현 주변에는 27개의 관측기가 설치돼 있다고 했다. 관측기는 25m 길이 수영장에 공기 알 하나가 일으키는 물결 변화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고 했다.
◆반복되는 실험
"정확한 예측을 위해 실험은 필수적이다.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복구에 들이는 돈보다 일이 터지기 전 실험에 쓰는 돈이 훨씬 적게 든다."
이바라키현 츠구바시에 있는 국립 방재과학기술연구소는 정밀한 예측을 위한 실험실이었다. 이곳에서 쓰는 연간 예산만 114억엔. 우리 돈으로 1천500억원이 넘는 돈이 재난 대비 실험에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정밀 예측을 하기 위한 곳답게 이곳 본관 1층 로비 바닥에는 일본 전국 재해 위험지도가 깔렸었다. 5만분의 1로 축소한 이 지도에는 지형과 산사태 발생 위치, 발생 범위, 지진 관측망, 화산 관측점, 적설 관측점 등의 정보를 담았다. 지역마다 녹색(화산 위험지역), 노란색(지진관측점), 붉은색(산사태 위험지역) 원을 표시해뒀다. 규슈지역은 화산이 집중돼 있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소설 '설국'(雪國)으로 유명한 니가타현은 붉은색으로 도배돼 있었다.
이곳의 자랑은 강우실험실이었다. 높이 21m, 너비 49m, 길이 76m의 실험실 안에서 시간당 최고 200㎜까지 인공 비를 내려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실험하고 있었다. 경사면 구조물에 흙을 채워놓고 강수량에 따른 산사태, 토사 유동현상, 사면 표층토의 변형 등을 실험한다고 했다. 실험을 통해 경사면 보강공법이나 토양 침식 방지, 녹화 공법 등 개선책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유비무환
"대형 재난이 언제, 어디에서 닥칠지 예상하고 있다."
일본 도쿄 중심가에는 녹지공간이 많았다. 평상시에는 시민 쉼터의 기능을 갖지만, 뜻밖에도 수많은 공원은 유사시 모두 피난처로 활용된다. 지진에 대비해 공원 주변에는 큰 건물이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공원에 산재한 나무뿌리들은 지반을 견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거였다.
도쿄도 고토쿠 아리아케 지역에 있는 임해광역방재공원도 대표적인 요새 중 하나였다. 평소에는 공원기능과 재난 대비 교육기능을, 재해 발생 때는 비상기지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13.2ha의 면적에 체험시설과 헬기 이'착륙장, 베이스캠프 등을 갖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의 재난 시나리오에 따르면 도쿄 23구 내에 진도 6의 강한 지진이 발생,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임해광역방재공원에는 현지 대책본부가 들어서 재해 응급 대책을 조정하게 된다.
평소 방재체험 용도대로 취재진이 찾은 날에도 이곳에선 아이들을 상대로 체험교육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이 따라하기 쉽도록 닌텐도 게임기로 체험을 진행했다. 지진 발생 72시간 생존전략 등을 알려주면서 주변의 생활용품을 이용해 살아남는 법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었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이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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