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정치 이슈] 네거티브 판치는 대선

입력 2012-12-15 08:00:00

유력 후보 이회창도 '兵風' 비방에 결국 무너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대구 동성로 유세에서 지난 대선후보자토론회에서 아이패드 커닝 논란을 빚었던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박 후보는 이 가방을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2일 오후 대구 동성로 유세에서 지난 대선후보자토론회에서 아이패드 커닝 논란을 빚었던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박 후보는 이 가방을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선 막판에 마타도어(흑색선전)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대선 판도가 초접전 상황으로 흐르면서 잠시 주춤했던 네거티브가 다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선거 막판 상대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흑색선전은 역대 선거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해 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선거 막판에 쏟아져 나오는 의혹들은 대부분 검증이 불가능하지만 상대 후보 감표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대선에서도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마타도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SNS로 퍼지는 네거티브

새누리당 측은 민주통합당의 '아이패드 커닝'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주장과 인터넷상의 '억대 굿판' 논란을 '거짓말 시리즈'로 몰아붙이고 있다. 근거가 모호한 흑색선전과 중상모략이 입과 인터넷,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일파만파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박근혜 후보와 관련한 각종 의혹은 ▷단독 토론회 당시 각본대로 연출 ▷박근혜와 신천지(이단 종교) 연루설 ▷2차 TV토론 당시 아이패드 커닝설 ▷정수장학회 해결 위한 수억원대 굿판설 ▷여론조사 기관에 수억원대 지원 ▷초교생 하교 시간 10시로 통제 ▷아이돌(연예인)은 군 복무 기간 3년 연장 등이다.

박 후보는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이 땅에 음습한 정치공작과 허위'비방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이를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이뤄야 할 중요한 가치가 정치쇄신이라면 마땅히 이번 선거부터 흑색선전의 병폐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각종 네거티브로 인터넷상에 난무하고 있다. ▷당선기원 굿판을 벌였고 ▷문 후보의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는 북한 주체사상 ▷노무현 청와대의 80%가 주사파 빨갱이 ▷문 후보의 호화 주택설 ▷문 후보 선친의 인민군설 등이다.

이런 흑색선전들은 근거가 모호하지만 SNS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무리 거짓이라고 해명을 하고 또 거짓으로 판명이 되더라도 퍼지는 속도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요즘 네거티브는 인터넷이란 도구를 만나면서 그 확산성과 부작용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계속해서 사진을 퍼 나르고, 음해성 글을 올리는 등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폐해를 제어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역대 대선 네거티브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후 지금까지 다섯 번 치러진 대통령선거 때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차별 공격, 흑색선전, 허위비방, 폭로 등 네거티브 공세는 단골손님이었다. 유권자들은 후보 자신의 장점과 정책을 강조하는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원했지만 각 대선 후보 진영은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인 네거티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실제 네거티브는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987년 13대 대선 때 각 후보는 대규모 청중 동원으로 세를 과시했고 불법 유인물 대량 배포와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주요 후보들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대선에 도전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네거티브 공세가 판을 쳤다. 결국 일부 유세장에서 사제폭발물까지 등장하는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현직 장관과 고위 공직자가 "(여당이) 다시 잡으면 (여당 노태우 후보의 유세를 방해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지 마라" "타작을 해야 한다"는 대화를 주고받는 '싹쓸이 발언'까지 나왔다.

14대 대선인 1992년에는 불법 도청에 의한 폭로가 등장했다. 정주영 후보 측은 부산 지역 정부기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여당인 김영삼 후보를 돕기 위한 선거 개입 내용의 대화를 나눈 것을 몰래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이른바 '초원복집 도청사건'이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으로 김 후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정 후보 측의 기획성 폭로였다. 그러나 결과는 불법 도청에 대한 비판 여론과 함께 김 후보 지지표를 결집시키는 역풍을 불러왔다.

2002년 16대 대선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였다. 1997년 대선에서 장남의 병역 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다시 "장남 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돼 '병풍'(兵風)이 거세게 불었다. 김대업 사건이다.

게다가 설훈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이 후보 측이 기업인 최규선 씨로부터 2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결국 대쪽 이미지의 이 후보는 떨어졌는데,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김 씨와 설 의원은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근거 없는 네거티브로 판결 난 것이다.

싱겁게 결과가 나온 제17대 2007년 대선에도 네거티브 공세는 존재했다. 당시 판세가 많이 기울었다고 판단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는 네거티브 선거를 통해 반전을 노렸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이 후보 가족의 위장전입과 자녀의 위장취업 의혹을 폭로하면서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역대 대선 때마다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선거가 끝난 뒤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네거티브 부작용이 부각될 때마다 여론과 정치권이 '네거티브 방지법' 제정 등에 나서지만 막상 선거가 끝나면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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