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휘의 교열 단상] 해 질 녘

입력 2012-12-10 07:49:39

사람마다 자신의 신조(信條)를 지니고 있다. 신조란 일종의 인생 목표다. 공자의 애제자인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선생님, 평생 지켜야 할 신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그것은 서(恕)이다."라고 대답했다. 한자 '용서할 서'(恕) 자를 풀이하면 '마음(心)이 서로 같다(如)'라는 뜻이다. 즉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같은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마음을 헤아려 그 마음과 하나가 된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이 바라는 것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것을 뜻한다. 겸손과 반대되는 교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를 자랑하며 남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자신을 잊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비우는 자세 즉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는 사람은 가진 것이 없으니 내세울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겸손해진다. 겸손한 사람은 그의 말에서 겸손이 드러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나서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며 자신을 낮춘다. 또한 자신이 무엇을 좀 가졌다고 으스대지 않고, 이웃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소나 개처럼 짐승이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순하다'라고 말하지 '겸손하다'라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겸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말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한계와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능이나 능력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내세우지도 않는다.

저녁 무렵 서쪽에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숙연케 된다. '해 질 녘'은 해가 질 무렵, '해 뜰 녘'은 해가 뜰 무렵을 뜻한다. 이 두 단어의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을 본다. '해 뜨다'와 '해 지다'는 하나의 단어가 아니므로 '해 뜰 녘' '해 질 녘'과 같이 한 글자씩 띄어 써야 한다. 인터넷에도, 옛 국어사전에도 하나의 단어로 등재되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해 질 녘' '해 뜰 녘'과 같이 '녘'이 이어질 때 띄어쓰기에 대해 살펴보자. '동, 서, 남, 북'과 '녘'이 결합할 때는 '동녘, 서녘, 남녘, 북녘'으로, '새벽녘, 샐녘, 어슬녘, 저녁녘, 저물녘'은 합성어로 인정하여 붙여 쓴다. 이에 반해 각각의 단어인 '아침, 황혼'과 '녘'이 결합할 때는 '아침 녘, 황혼 녘'으로, 한 단어인 '동트다'의 활용형에 '녘'이 붙을 때는 '동틀 녘'은 띄어 쓴다. 방향이나 때를 나타내는 '녘'을 '저녁' 등에 쓰이는 '녁'으로 잘못 표기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도 이제 20여 일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 한 주 언제든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한 해를 보내는 감회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단 이때만큼은 띄어쓰기에 대해 생각은 하지 말도록.

성병휘<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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