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전북 고창 '풍천장어'

입력 2012-12-08 07:25:28

옥수수불에 구운 장어, 육질 쫄깃 힘은 불끈 "으메 좋은거∼"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 앞 인천강에 사는 민물 뱀장어를 거론하면 미식가마다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쫀득하면서도 혀에 감기는 듯한 그 감칠맛은 한번 맛보기만 하면 잊지 못한다고 이구동성이다. 뭣 때문일까? 밀물 때 바람을 몰고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온다고 해서 풍천(風川)장어라고 불리는 이 뱀장어는 작설차(雀舌茶), 복분자술(覆盆子酒)과 함께 고창 선운산의 3대 특산물 중 하나. 연어와는 반대로 민물장어는 오랫동안 강에서 살다 때가 되면 깊은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내로라하는 미식가들도 이 풍천장어 양념구이를 안주 삼아 '요강을 깬다'는 고창 복분자술을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국내 최고의 육질 '갯벌 풍천장어'

고창읍내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이 서해에 닿는 아산면 내 인천강 양쪽에는 약 20여 개소의 장어구이 집이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강을 따라 더 내려가 보면 민물장어를 기르는 양어장이 수십 곳이나 들어서 있다. 인천강에서 자연산 장어가 잡히기도 하지만 값이 워낙 비싸 구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그래서 통상 이곳에서 양식한 장어를 장어구이 재료로 쓴다. 뱀장어 양식은 산란과 부화 과정을 인공적으로 할 수가 없어 실뱀장어를 일본과 대만에서 사들여와 양식한다. 일반적으로 무게가 0.2g 정도 되는 실뱀장어는 8개월 정도 키우면 250g까지 자라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풍천장어는 일반 양식장어와는 달리 독특한 기술로 기릅니다. 자연산 갯벌 장어에 가깝도록 육질을 만들기 위해 민물에서 양식한 장어를 일부러 바닷물에서 자연 상태로 뒀다가 출하하지요."

인천강 강가 장어구이 단지 내 '강나루 집' 대표 김보연(45) 씨는 양식장어를 바닷물에 넣어 두는 동안은 사료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축양으로 비만해진 장어들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면서 6개월 정도면 마리당 중량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 이렇게 육질을 단단하게 만든 장어가 바로 '갯벌 풍천장어'로 손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은 일등 장어구이 재료가 된다고 한다. 일반 풍천장어는 ㎏당 3만6천원인데 비해 갯벌 풍천장어는 ㎏당 5만원으로 꽤 비싸다.

"구워 놓으면 큰 것은 살이 탄탄하고 작은 것은 부드럽지요. 막 잡은 장어보다는 몇 시간 숙성시킨 장어가 더 맛있습니다."

숙성 장어라야 살과 껍질이 분리되지 않게 잘 구울 수도 있고 쫀득한 감칠맛도 더하다고 한다.

"직화구이와 다르게 연기가 나지 않잖아요. 발암물질도 생성되지 않지요. 아주 친환경적이잖아요."

김 씨의 부인 유금옥(43) 씨는 이곳 장어구이 집은 대부분 옥수수로 굽는다고 소개했다. 장점은 민물장어 특유의 느끼함을 없애주고 구수한 옥수수 향이 장어구이 맛을 한층 높여 준다고. 가스불이나 숯불은 딱딱하게 구워지지만 옥수수 불은 불기운이 부드러워 육질이 담백해지고 장어 맛도 더욱 부드럽게 한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맛

풍천장어 굽는 방법은 양념소스가 각기 다르듯이 집집이 조금씩 다르지만 산 장어를 잡아 손질한 뒤 냉장고에 넣어 얼리지 않고 6시간 이상 숙성시킨 다음 재료로 사용한다. 손님상에 내기 전에 양념소스를 붓으로 발라 미리 초벌구이를 한다. 소스는 여러 가지 채소를 다려서 국물을 낸 후 복분자와 고춧가루, 각종 한약재와 물엿 그리고 장어 달인 진액을 넣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3, 4시간을 푹 고아서 만든다. 초벌구이를 한 풍천장어 양념구이를 다시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 크기로 가위로 잘라 다시 굽는다. 초벌구이를 앞뒤로 구웠기에 재벌구이에선 세워서 자른 면 쪽을 번갈아 가며 모서리로 굽는다. 그래야, 골고루 다 익는단다.

"풍천장어는 아무리 맛있어도 많이는 먹지 못해요. 영양가가 높아 한 사람당 한 마리면 충분하지요."

강나루 집 맛 지킴이인 유 씨는 많이 먹어 봐야 두 사람이 세 마리 정도라고 한다. 혼자서 다섯 마리나 먹는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물고, 보통은 한 사람이 한 마리 정도라고 한다. 큰 것, 작은 것 따지지 않고 마리로 판다.

드디어 먹어 보는 순간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데 고소한 냄새가 구미를 더욱 자극한다. 노릇노릇 구워진 모양도 맛깔스럽다. 입안 가득히 장어구이 향이 풍긴다. 감칠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감칠맛의 육즙이 가득하다. 어떻게 민물장어인데도 갯장어처럼 육질이 이렇게 쫄깃할까. 말 그대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기막힌 맛이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제맛이지요. 생강하고 같이 드셔 봐요."

양념이 탄 석쇠를 얼른 갈아 주면서 맛있게 먹는 방법도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채 친 생강을 곁들여 복분자로 만든 양념소스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방금 절인 들깨순, 부추 겉절이도 장어구이와 어울린다. 고추 장아찌의 새콤한 맛도 장어 맛의 추임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시원한 복분자 나박김치도 뜨거운 장어와 기막히게 어울린다. 그냥 소스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싱겁게 절인 배추와 깻잎 그리고 상추를 이용해 쌈을 싸먹는 풍천장어의 맛도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

후식으로 장어탕이 나온다. 각종 채소를 넣고 추어탕처럼 구수하게 끓였다. 양념구이가 주류지만 양념소스를 바르지 않고 소금만으로 간을 해 굽는 소금구이도 별미다. 풍천장어 특유의 감칠맛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어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기도 하다. 별도로 낸 구운 장어뼈는 마치 과자처럼 바삭거리고 고소하다.

풍천장어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는 각각 1인분에 마리 당 2만8천원이다. 토종 된장찌개와 열무냉국수 맛도 일품.

"고창 사람들은 외지 손님들이 오시면 필수코스로 풍천장어 집으로 모시고 찾아오시지요."

4, 5월 봄철과 7, 8월 여름휴가철 그리고 9, 10월 단풍시즌이면 손님이 가장 많다고 한다.

◆풍천장어와 복분자, '쌍끌이 향토 음식'

고창의 풍천장어와 함께 스태미나 식품으로 손꼽는 복분자도 풍천장어의 유명세를 더하는데 한몫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복분자술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알려진 다음의 이야기가 고창 향토 음식의 전국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옛날 고창의 한 부부가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체력이 너무나 빈약했다. 좋다는 약을 죄다 구해 먹여 봤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스님이 산딸기를 먹여 보라고 권해서 날마다 부지런히 먹였더니 놀랍게도 아들이 매우 튼튼해졌다. 그 아들이 얼마나 건강했는지 저녁 잠자리에서 소변을 볼 때마다 오줌 항아리가 엎어지고 말았다. 바로 지금까지 먹였던 산딸기가 아들의 양기를 강하게 한 것. 그래서 산딸기를 한문으로 복분자로 쓴다고 한다. 뒤집힌다의 복(覆)자와 항아리라는 뜻의 분(盆)자, 그리고 아들자(子) 자를 합해 복분자라 한다는 이야기다.

뱀장어의 강한 일생에 대한 이야기도 스토리텔링 소재다. 민물에서 5~12년간 살다 알을 낳기 위해 강을 떠난다. 난류를 따라 머나먼 태평양 한가운데 심해로 찾아가는 것.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연어와는 반대의 일생이다. 산란기의 뱀장어는 등 쪽은 금속광택을 띤 적동색, 배 쪽은 붉은빛의 은백색, 가슴지느러미는 황금색, 주둥이 끝은 자흑색의 강렬한 혼인색을 띤다. 대체로 우리 눈에는 등 쪽 검은 색, 배 쪽은 흰색을 띤 민물장어만 봐 왔기에 뱀장어의 혼인색은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이때 소화기관은 극도로 퇴화하고 생식기관만 뱃속에 남는다. 깊은 바닷속에 산란하고 죽게 된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뱀장어들은 어미가 살았던 강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댓잎처럼 생긴 이 새끼뱀장어는 난류를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간 대양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면서 어미의 고향인 강으로 향한다. 강에 다다르면 하얀 실뱀장어로 색깔이 바뀌는데 양식 뱀장어는 모두 이 실뱀장어를 잡아다 기른 것. 이 실뱀장어들이 강에서 자라 어른이 되면 다시 산란을 위해 바다를 찾게 된다. 이처럼 강한 생명력의 민물장어는 설명이 더 필요없는 스태미나 음식이다. 풍천장어의 효능으로 동의보감 등 옛 의서에는 오장의 허한 것을 보하고 특히 폐에 좋다고 기록돼 있다. 식품이지만 각종 영양이 풍부해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기초체력을 보강해 주는 약제로도 쓰였다. 고창군도 "옥황상제도 요새는 전북 고창서 온 사람을 보면 풍천장어 맛을 몰래 물어 본다"면서 공식적으로 '뉴 스토리'를 새로 퍼뜨리고 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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