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여러분에게 학교는 어떤 곳입니까

입력 2012-12-04 07:00:55

이현지 원화여고 교사
이현지 원화여고 교사

고교 시절 저는 그다지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열일곱 살이었고, 야간 자습, 그리고 살과 변비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으며, 나의 자유를 얼른 회복하고야 말겠다는 나름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학교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는 정말이지 견디기가 힘든 것이었습니다.

관심 없는 수업 시간에는 엎어져 자고, 꾀병을 부려 야간 자습도 빼먹고, 어떻게 하면 한 시간이라도 더 놀아볼까 하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제 인생에서도 두고두고 그리울 만큼 즐거운 것이었지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른이 되었고, 교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만 흘러가는 걸까요. 어느덧 집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은 더 이상 딸 뿐만이 아니게 되었고, 사회에서도 더 이상 어리다는 말로 실수를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저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은 멋모르고 소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세상에 나온 이후에야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왜 나는 저 아이만큼 치열하지 않았던가. 왜 나는 저 아이만큼 열렬하지 못했던가. 왜 나는 저 아이만큼 신나게 살지 않았던가.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나보다 더 갑갑해 보이는 아이들도 있지요. 공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저 노는 일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지금 우리 아이들의 생활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둥,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둥, 학교폭력이 어떻다는 둥, 오늘은 또 누가 어떻게 혼이 났다는 둥…. '학교'라는 교육 현장이 언제부터 이렇게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우리의 교실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대한민국 공교육에 위기가 왔다고들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금 이 순간 학생들을 꾸중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아이들과 같은 시절,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직접 겪어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시간이 더 지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길로 갈 수 있도록,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의 마음을 부디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학창 시절은 분홍색입니다. 동심을 지니고 있기에 정말 순진할 수 있으며,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최고로 자기다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아름다운 교정 안에서 동고동락한 지기들과 교사들이 내 곁에서 웃고 있고, 만약에 울고 있다면 안아 줄 수 있고 안길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더욱 정성스럽게 꽃물 들여가며 지금을 보낼 수 있는 겁니다.

오늘도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왁자지껄 하루를 꾸려보고자 합니다. 알고 보면 추억과 사랑이 샘솟는 이곳, 여러분, 여기는 '학교'입니다.

이현지 원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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