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시고~ 쏘세요."
학창 시절. 주택복권 추첨 방송 시간이 되면 괜히 신이 났다.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아버지가 사오신 복권 번호를 맞혀 보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준비하시고~'라는 사회자의 코멘트가 나오면 왠지 모를 긴장감에 가슴을 졸이곤 했다. 숫자가 적힌 동그란 판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쏘세요'라는 사회자의 말과 동시에 도우미가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화살이 날아가고 돌고 있는 판에 꽂힌다. 이어 화살을 젖히고 '○번' 하는 소리와 함께 추첨 번호가 정해진다. 각 단위별 번호가 정해질 때마다 환호와 실망의 탄성이 엇갈리곤 했다. 1등이 아니더라도 몇만원이나마 당첨될라치면 그날은 용돈을 벌 수 있는 운수 좋은 날이었다. '화살이 잘못 날아가면 어떡하지'하는 걱정도 '버튼을 한 번 눌러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도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로또가 대신하기 전까지 한때 국내 복권의 대명사였던 주택복권 추첨 때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2일은 로또 복권이 발행된 지 10년이 된 날이었다. '로또'는 2002년 12월 2일 첫 발행된 이후 단숨에 주택복권을 밀어내고 국내 복권의 지존 자리에 등극했다. 1회부터 최근까지 국민 1인당 평균 73만원어치를 샀다고 한다. 지난달까지 로또의 누적 판매액은 총 26조9천387억원에 이르렀다. 회당 평균 518억원어치가 팔렸다. 이를 계산하면 매회당 5천만 번의 게임이 이루어진 셈이다. 한 게임당 1천원인 가격과 1인당 5게임을 구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회당 국민 5명당 1명꼴로는 로또를 샀다는 얘기다. 가족당 1명 정도는 로또를 구매할 정도로 '로또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주택복권 시절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복권은 적은 돈으로 고액의 당첨을 기대하고 아울러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오락이었다. 행여나 하는 심정에서 과도한 투자를 하는 사행성과는 조금 비껴 서 있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위기뿐 아니라 불평등지수가 높고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천원짜리 '심심풀이 오락'이 당첨금 수십억, 수백억원을 노린 사행성 상품이 되어버렸다. 불안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의 방증일 게다.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보름 남았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는 일은 전 국민이 모두 로또에 당첨되는 일과 같다.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고, 삶의 질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국가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과거의 대선을 보면 우리 국민들은 아직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복권(선거) 자체를 구입하지 않았거나 마치 로또 찍듯이 투표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나 이념의 장벽, 그리고 여론의 향방이나 대세의 흐름에 따라 '묻지마' 투표를 한 경우가 많았다. 투표는 로또 복권이 아니다.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여론과 대세에 따라 후보를 찍어선 안 된다. 철학과 정책을 살펴야 되고 각각의 후보들이 지나온 세월 동안 무엇을 했고 무슨 말들을 했으며 어떤 철학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로또의 회당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분의 1이다. 흔히 벼락을 맞은 후 병원에서 치료하고 나오다 한 번 더 벼락을 맞을 확률이라고 한다. 반면 이번 대선에는 7명의 후보가 나섰다. 확률상 비교가 안 되는 '보장된' 복권인 셈이다. 보름 후 한 표가 우리의 인생에 로또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19일은 돈 안 들고 확률 높은 복권을 사는 날이다. 자, "준비하시고~ 찍으세요".
최창희<특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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