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안 치고 농사짓기/민족의학연구원 지음/ 보리 펴냄
'약 안 치고 농사짓기'는 식구들 먹을 채소를 직접 기르는 텃밭농부들에게 반가운 책이고, 전업농부들에게는 미래를 여는 새로운 농법일 수 있다. 단,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식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할 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농약을 안 치고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손 놓고 되는 대로 두고 본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맹독성 화학 농약 대신 천연 농약을 어떻게 만들어 쓸 것인가를 알려준다. 식물 가운데는 살충, 살균, 살초 작용이 있는 것이 있고, 식물의 생장을 조절하여 비료작용을 하는 것들도 있다. 옛날에 할미꽃을 갈아 뒷간에 뿌려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막았고, 애기똥풀 즙을 뿌려 벌레를 퇴치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식물을 원료로 만든 농약은 살충작용, 살균작용, 살초작용, 식물생장자극, 영양작용, 농작물 보호작용 등 다양한 효과를 낸다. 화학 농약의 경우 살충제와 살균제를 따로 쳐야 하고, 비료를 또 따로 주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가령 졸참나무 잎과 솔잎, 쑥에는 타닌 성분이 들어 있다. 타닌은 살충과 살균작용을 하면서도 과산화분해효소의 활성을 높이고, 강한 항산화작용으로 식물의 생육을 이롭게 한다. 볏짚, 참나무과의 여러 나무, 소나무, 미루나무, 양버즘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 잎에도 타닌과 페놀, 트리아콘타놀, 콜린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식물성 농약 원료로 쓸 수 있다. 순수 트리아콘타놀의 경우 물에 분산시키기 위해 분산제, 용해보조제를 써야 하지만 식물에 들어 있는 트리아콘타놀은 작은 입자로 분산되어 있어 별도의 용해제를 쓰지 않아도 잘 우러난다.
식물성 농약도 그 용도에 따라 살충과 살균 등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이 많지만,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식물성 농약은 화학 농약과 달리 병해충에 저항성이 잘 생기지 않아, 약효가 길고, 선택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이롭다. 무엇보다 원료가 풍부하고 생산과 사용방법이 간단해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텃밭 농부들이 주로 키우는 배추에는 배추벌레라는 손님이 있다. 잎을 갉아먹는 데 기막힌 솜씨를 보여주는 녀석이다. 배추벌레는 박새, 쑥국화, 독말풀, 파리풀, 산초나무를 40배 우려낸 추출물에서 50% 이상의 살충효과를 보인다. 가죽나무, 애기똥풀, 아마, 명아주, 오리나무, 까마중을 20배로 우려낸 추출물도 50% 이상의 살충효과가 있다. 또 쑥 추출물을 벼논에 뿌리면 잡초가 훨씬 적어진다.
비늘줄기째 캔 양파를 5~10배 물에 우려 밭에 뿌리면 진딧물과 사과응애, 밀줄기녹병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오이의 노균병에도 효과가 있고 가지, 토마토, 수박, 딸기밭에 양파를 사이짓기하면 풋마름병, 마름병, 노균병, 시듦병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상추를 우려낸 액을 50배 정도 물에 희석해서 토마토 밭에 뿌리면 토마토 썩음병을 일으키는 푸사륨균을 억제할 수 있다.
옥수수를 기르고 싶다면 옥수수 사이에 고추를 심어 조명나방을 쫓고, 섭식활동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배추와 양배추 밭에도 고추를 사이짓기하면 진딧물과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막을 수 있다.
식물성 농약의 원료가 되는 식물은 세계적으로 2천여 종에 이르며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흔히 구할 수 있다. 살충'살균작용을 하는 식물은 1천600여 종이며, 균류에 적용되는 식물 142종, 세균류에 적용되는 식물 24종, 바이러스에 적용되는 식물 19종, 기생선충과 기타 해충에 적용되는 식물도 44종에 이른다. 특히 농업부산물인 볏짚, 볏겨, 옥수수 짚, 밀짚, 보릿짚, 들깨 짚, 감자 잎줄기, 오이, 호박덩굴, 고추, 토마토, 담배, 가지의 잎과 줄기 등에 식물성 농약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이런 식물들에서 추출할 수 있는 농약의 성분과 적용범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식물성 농약을 쓸 때 주의점도 많다. 정확한 양, 추출하는 시간과 온도, 사용기한을 잘 지켜야 하고, 철, 구리, 알루미늄 같은 금속용기, 시멘트 탱크는 식물성 농약 보관용기로 부적절하다. 현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도 있다. 예컨대 벼물바구미를 잡기 위해 식물성 농약을 쓸 때는 논물의 높이를 3, 4㎝로 해야 하고, 그 논물이 증발해 농약성분이 벼의 뿌리목에 집중될 때까지 물을 대지 않아야 한다. 또 논물이 마를 즈음 물을 댈 때는 천천히 대야 한다는 점 등이다. 205쪽, 1만1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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