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고야, 쿠르베, 홍성담

입력 2012-11-28 11:13:05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과 파리 오르세미술관에는 19세기 당대인들의 주목을 끈 그림들이 소장돼 있다.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음란성 때문에 일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고 세인들의 날카로운 눈을 가리기 위한 덮개 그림까지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벌거벗은 마하'는 '옷 입은 마하'로 가렸고 '세계의 기원'은 '볼로냐 성'으로 위장했다.

하지만 '벌거벗은 마하' 때문에 고야는 종교재판에 회부됐고 작품들은 30년 가까이 어두침침한 창고에 갇혀 있었다. 반면 더 노골적인 음화(淫畵)인 '세계의 기원' 때문에 쿠르베는 고초를 겪지 않았다. 활짝 다리를 벌린 여자의 은밀한 부분만을 묘사해 큰 충격을 주었지만 예술에 대한 관점, 예술에 가해진 종교'정치적 족쇄의 차이 등 시대상의 변화로 둘은 다른 처지에 놓였다.

우리 대선 정국에서도 이런 예술 스캔들이 벌어지고 있다. 선관위가 어저께 박근혜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그림과 여성의 다리 사이에서 뱀의 몸통을 한 박정희가 태어나는 그림을 블로그에 올린 홍성담 씨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논란이 일자 홍 씨는 "하루빨리 고발돼 예술을 정치가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중미술가 홍성담은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그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해온 화가다. 1989년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낸 일 때문에 3년 넘게 옥살이도 했다. 홍 씨는 "예술가의 작업은 그 땅 사람들의 역사를 새롭게 복원하는 일이며 예술의 보편성을 갖고 국가폭력의 문제를 알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야스쿠니가 있고 박정희가 있고 대추리나 제주해군기지, 용산참사가 있다. 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없다.

예술에는 종교와 같은 치유의 힘이 있다. 음악과 미술이 치료에 쓰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홍성담식 그림은 주제 여부를 떠나 자기 치유는 될지언정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림자를 만든다. 예술의 이름으로 시대와 역사를 고발하는 것이 기껏 감정적 배설이라면 한계는 분명하다. 홍성담이 고야나 쿠르베에게 배워야 할 것은 국가폭력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라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심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