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정재용

입력 2012-11-28 07:23:14

가을 전어가 선술집 안주로 자취를 감출 즈음, 반가운 손님이 술상에 나타난다. 과메기다. 전어가 횟감으로 대중들의 사랑은 받은 날은 오래지 않다. 전어는 울진이나 삼척, 후포와 같은 경상도 동해안 북쪽 지방 어민들이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가을 한철 즐겼던 횟감으로,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엄청났기에 부둣가에 쌓인 전어는 삽으로 손수레에 퍼 담아 어묵 공장으로 직행하던 어종이었다.

이처럼 한때 괄시를 받던 전어가 요즈음은 미식가들의 사랑은 받으면서 '가을 전어 맛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외치며 찾아드는 주객들에게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의 맛이 되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과메기도 전어와 흡사하다.

회상하니 30년이 넘었다. 필자는 당시 경상북도 영일군에 위치한 어촌 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교실수업 분위기가 무너졌다는 작금의 교육환경과 비교해보면 나는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가 풋내기 교사라도 선생님으로 존경하던 마지막 시대의 교사가 아니었던가 한다.

3월 초, 퇴근 후에 선배 교사가 소주병을 들고 하숙집으로 찾아왔다. 신문지로 감싼 두루마리를 펼치자 역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생전 처음 보는 과메기였다. 선배는 능숙하게 꽁치의 머리를 손으로 끊고 껍질과 내장을 대충 발라내더니 김으로 싼 생미역에 마늘편, 실파, 풋고추를 넣고, 초고추장을 찍은 통과메기를 소주와 함께 권했다. 하지만 갈색으로 변한 피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권하는 과메기를 선뜻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12월에 잡은 꽁치를 새끼줄에 엮어 농가 부엌의 살창에 걸어두고 연기에 그을리면서 냉동과 해동을 거듭하며 말렸다는 그의 정성 때문에 구토와 속달램을 번갈아 하면서 억지로 먹었다.

지인의 초청이 있었다. 1박 2일의 여정으로 구룡포 과메기 축제에 참가했다. 과메기를 말리는 곳이 살창이나 처마에서 바닷가 덕장으로 변했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 해동이 되면서부터 먹기 시작한 곰삭은 젓갈류 개념의 과메기가 지금은 초겨울이 되면 본격적으로 생산되는 건조 과메기로 전환되어 전국적으로 팔려나가고, 머리와 뼈, 내장 등 부산물은 냉동가공과정을 거쳐서 양식어종의 먹이로 공급된다.

지역주민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꽁치를 잡는 어민, 꽁치를 손질하는 아저씨, 손질된 꽁치를 덕장에 너는 아주머니, 이를 수거해서 판매하는 상인과 횟집 주인 등, 자그마한 포구 구룡포는 바빠서 강아지 손이라도 빌린다는 농번기의 농촌과 흡사했다.

과메기의 원조인 청어가 꽁치로 탈바꿈했지만 좀처럼 장기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역경제의 회복에 과메기가 일조를 담당하는 현장은 지역주민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살아 꿈틀거리는 하나의 생명체였다.

정재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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