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 식사 한번 하지."
얼마 전, 지역의 한 복지재단 설립자이며 이사장을 지낸 어느 병원장님의 전화였다. 그분은 복지란 단어가 무색하던 시절 사재를 털어 지금의 복지재단을 만들고 노인과 장애우 복지, 볼런티어 운동, 청소년 문화 운동에도 앞장서시다가 작년 12월, 이사장직을 혈육이 아닌 동료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은퇴식을 가졌었다.
"내년에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할까 하는데 같이 했으면 해. 강의만 하면 지루하니까 주제에 맞는 짧은 공연을 넣었으면 하는데."
식사 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불쑥 말을 꺼내셨다. 단순한 식사 자리는 아닐 거라고 예감은 했었지만, 얼마 전 간경화 진단을 받았던 분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도 중요해. 언젠가는 죽을 인생인데 다들 죽는다는 사실은 잊고 사는 것만 생각해. 그러다 보니 바빠지고 본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소홀하고, 오늘 살다 바로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다들 죽음은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해.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죽음은 은퇴야, 인생의 은퇴. 은퇴가 아름다울 수 있게 미리 준비하자는 거지!"
원장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란 단어가 현실성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죽음은 아직 먼 미래의 얘기고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 준비를 어떻게 하지라는 현실적인 생각과 이분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매회 프로그램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요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습 중이다. 이 작품이 그날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스크루지는 결국 돈이 많은 부자가 되지만 대신 감성과 사람을 잃어버리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외톨이 수전노가 되고 만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도 죽음은 스크루지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병으로 죽어가는 한 어린아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스크루지는 미래의 자신의 묘비명을 보고 "제발, 내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라고 외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 없이 행복한 삶일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크루지가 소설 속에서 원장님에게 묻는다. "전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변하기를 원하는 겁니까!" 아름다운 은퇴를 보여줬던 이가 대답한다. "죽음은 은퇴야, 인생의 은퇴. 은퇴가 아름다울 수 있게 미리 준비하자는 거지!"
김은환< '굿 프랜즈 아츠 그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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